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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
로켓퀼

1. 

 

  “메리 크리스마스, 로켓.”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제 의지로 감고 있던 눈을 뜰 수 있었다. 주변은 어둑했고 제가 누운 자리는 차가웠다. 내게 따스하고 푹신한 곳은 어울릴 리가 없으니까. 그건 온전히 네가 향유해야 하는 것들임이 마땅하니까. 버석하게 마른 얼굴을 가볍게 쓸기를 반복하고는 얼마나 지난지 모를 시간 속에 눕혔던 몸을 일으킨다. 관절은 기름칠이라도 해야 할 것처럼 뻑뻑하다. 그럼에도 너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 웅웅거리며 낮은 소리와 함께 작은 진동이 울리는 기계 앞으로 몸을 이끌고 가서 선다. 

  이 차가운 기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차가운 것은 전부 내 것이고, 따스한 것은 전부 네 것이었으니 나는 그저 여태 스스로와 자문자답하듯 이야기를 해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은 네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것을 반증하기라도 하듯, 제가 좇아온 것이 전부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것을 반증하기라도 하듯. 내가 사랑한 것은 이 기계가 아니라 너였으니까. 입술을 씹어대길 수 차례. 아, 이것도 네가 좋아하지 않는 내 습관이었는데. 생각이 그곳까지 닿자 마음이 선다. 곧바로 버튼을 눌러 웅웅거림을 멎게 하고는 얇은 피복으로 싸여진 코드를 뽑아낸다. 이 검은 코드를 뽑아낸다고 하여 내게서 널 뽑아내진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한 것일까. 거대하면서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제는 고철이 되어버린 것 옆으로 몸을 기대고 앉아본다. 아무런 소리도, 움직임도,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나에게 이제야 마침표를 알려주는 것만 같다. 

 

2. 

 

  “아, 졸라 시끄럽네.” 

  연말이라고 들뜨는 것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저 달력 한 장 넘기는 것, 새 달력을 꽂아 넣는 것이 아닌가? 재작년과 올해는 다를 것이 없었고, 이와 같이 올해와 내년은 다를 것 없이 좆같을 것이 분명한데. 다들 한껏 상기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는 꼴이 보기가 싫었다. 혼자 작게 중얼거린 것은 누군가 듣길 바라서 한 말은 아니었는데. 

 

  “야. 넌 연말에도 그런 소릴 해야겠냐?’ 

  “꺼져. 돼지 새끼.” 

  이상하게 계속 주변에서 알짱거리는 뽀얀 돼지 새끼, 흔한 중상 계층 집안에 사랑받고 자란 외동 아들, 머리에 든 것도 없고—꽃밭이랑 처먹을 게 든 것 같긴 하다—몸도 가볍게 놀리는 새끼. 이것 이상으로 저 새끼를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기도 하고, 딱히 깊게 생각한 적도 없었다, 정말이다. 특유의 오지랖인 건지, 사랑받고 자란 것을 주변에 나누고 싶기라도 한 건지 실실 쪼개면서 다니는 면상에 주먹을 내리 꽂아주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제일 처음으로 면상을 내려치고 싶었던 때는… 그래, 과학 시간이었다. 

  “야. 너 공부 진짜 잘한다며? 덕분에 이번에 성적 잘 받겠다!” 

  아, 어쩌다가. 무작위로 팀을 짜도 확률적으로 거슬리는 무리의 중심인 새끼와 될 가능성이 높지 않으니 딱히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는데. 제가 유독 거슬려하는 무리는, 졸라 오합지졸이다. 덩치가 무식하게 큰 놈—얘가 대장인 줄 알았지만 하는 짓이 영 몸빵용일지도 모르겠음—, 학교에 잘 나오진 않지만 얘네랑 어울리는 여자애 하나—얘네 아빠가 검은 돈을 만진다는 건 교장도 알 것 같음—, 그리고 졸라 쎄하게 사람 쳐다보는 이상한 여자애 하나—영적인 존재를 본다는 소문이 도는데 누가 그런 걸 믿는지—, 그리고 얘네의 대장격처럼 구는, 나와 같은 조가 된 놈—원래 이런 놈들이 제일 이상한 법—. 다들 웬만하면 이 괴짜 무리와 어울리고 싶어하지 않았고, 저 또한 마찬가지였다. 역시 확률 게임은 좆같다. 그 작은 확률에 내가 신경을 이렇게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성적과 해온 실험들이 성공적이라 무난하게 제가 원하는 대학과 랩실에 들어가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사실상 성적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새끼가 하는 말이… 뭐, 덕분에 성적 잘 받겠다? 얼굴에 주먹을 꽂아주고 싶었다. 

 

  “너 같은 새끼들도 성적을 챙기냐? 웃기네. 인생 놓은 줄 알았더니.” 

  “야, 나 같은 게 뭔데? 너 나 뭘로 보는 거야? 내 이름은 아냐?” 

  퀼, 자기 이름이라며 한 음절 밖에 되지 않는 이름을 가르쳐준다. 피터 제이슨 퀼, 이라고 작게 덧붙여주지만 퀼이라고 부르란다. 적당히 거리를 두라는 느낌이 드는 호칭에 딱히 반응을 하지 않으며 대꾸도 않는다. 너와 내 거리는 퀼이라는 이름을 부를 정도이니까. 퀼, 생긴 거랑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공부랑 거리도 멀고, 제대로 공부를 해본 적도 없다면서 같이 팀 과제를 하게 되어서 좋다며, 많이 배울 것 같다며 조잘거리는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제 주변에는 친구가 없을뿐더러 다정히 말을 걸어줄 사람도 많지 않으니까. 학교 과학 시간에만 과제를 하기에는 턱없이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방과후에 잠시 만나 과제를 이어하기로 한다. 제 집으로 초대할 수는 없었다. 쓰레기장 같은 곳에 널 초대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잘 사는 외동아들이 그런 곳에 앉을 리가. 

 

  “우리 집 가자! 별로 안 멀어서 금방 갈 듯. 아빠랑 저녁도 먹고 가!” 

  “바쁘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옆에서 종알거리는 네게 별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수많은 사람들처럼 제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한 명이고, 10대에 마주한 철없는 새끼들 중 한 명이니까. 처음으로 마주한 네 집은 예상대로 넓고 깔끔했다. 마당이 있었고, 잔디가 정리되어 있으며, 하얀 집이 누가 봐도 관리를 잘한 곳 같았다. 제가 살고 있는 플랫과는 다르게 말이다. 내가 사는 곳은 빛도 들어오지 않고, 고작 노을 정도만 살짝 볼 수 있는 방인데. 옆집이 세탁기를 오전 6시부터 돌린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아랫집은 불륜을 하고 있으며, 윗집의 꼬맹이가 보행기를 졸업했다는 것을 전부 알 수 있는 곳인데. 

  내부는 조금 정신이 없었다. 잡다한 잡동사니와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발에 채이는 작은 쓰레기들이 있었다. 그래도, 따스했다. 잠시 제 방을 치우고 오겠다며 먼저 위층으로 뛰어올라간 너를 보며 짧게 혀를 차고는 제 멋대로 거실을 구경하기 시작한다. 작은 액자에는 앳된 돼지 새끼의 얼굴과 아저씨의 얼굴이 있다. 아마도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이겠거니. 전혀 닮지 않았다고 생각해본다. 아저씨는 잘생겼는데 저 새끼는 영. 주변에 놓인 작은 액자들을 하나둘 더 구경해보니,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아저씨 사진은 많은데, 왜 아줌마 사진이 없지. 이혼? 흔한 일이지, 뭐. 눈을 꿈뻑이며 거실을 배회하다 보니 다 치웠다며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집주인 아들이 보인다.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따라서 2층으로 올라간다. 

  방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지저분하고 정신도 없었다. 이게 치운 거라고? 온갖 가수들의 LP와 테이프가 한 벽면을 채우고 있었고 침대도 너저분하고. 침대는 또 왜 우주 컨셉인데. 발을 도대체 어디에 디뎌야 할 지 모르겠다. 편한 곳에 앉으라는 목소리에 눈을 찌푸리며 쏘아본다. 저 말갛고 동그란 얼굴이 지나치게 순수하다. 

  “야, 앉을 데도 없잖아. 개 더럽네.” 

 

  미안하다면서, 자기가 청소를 잘 못한다며 주방에 있는 테이블에서 과제를 해도 되겠냐는 네게 더 타박하지는 못한 채로 다시 1층으로 내려온다. 주방 테이블이라고 깨끗하진 않았지만, 방보단 나았다. 못마땅한 제 시선을 느꼈는지 한쪽으로 시리얼 박스를 밀어두면서 머쓱하게 웃는 모습이 뭐랄까, 학교에서의 해사함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부모님은 다 일 가셨냐?” 

 

  딱히 걸 말이 없었다. 너에 대해서 궁금한 것도 없고, 대충 과제만 하고 집에 갈 생각이었으니까. 노트북을 켜면서 가볍게 건넨 말이었다. 그렇다면서, 저녁까지 먹고 가라는 말에 됐다며 가볍게 쏘아붙인다. 단란하고 화목한 가족 사이에 끼어봤자 상호 간 불편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내게 꼬치꼬치 모든 것을 캐물을 것이 분명했고, 부모도, 출신도 불분명한 나랑 같이 놀게 하는 걸 꺼려하겠지. 보지 않아도 반응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과제는 그리 어려울 것이 없었다. 제가 아는 것을 그저 고등학생의 수준에 맞게 해석해야 했고 풀어내야 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는 너와 파트너가 된 것이 나쁘지 않았다. 얘 기준으로 설명하면 대충 다른 새끼들도 알겠거니. 

 

  “그러니까, 플라즈마가 고온이라 입자 운동 에너지가 크고 전도성도 높다는 거지? 맞나?” 

 

  개념을 하나도 모르더니 제가 한 번 이야기를 해주고 나니 곧잘 이해하고 적용한다. 제가 설명을 친절하게 해준 것은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웠을 텐데. 생각보다 멍청하지 않은 것인지. 발표도 본인이 해도 되겠냐고 물어오길래 그러라고 했더니 표정이 밝아진다. 이런 과제에서 발표를 시켜주는 사람이 처음이라면서, 다들 자길 못미더워하는 편이었다면서. 그렇게 생겼다고 한 마디 거들려다가 괜히 입만 아파질 것 같아서 무시했다. 

 

  “아, 저녁 먹고 가! 아빠 곧 오신다던데. 셋이 먹자!” 

 

  귀찮은데. 또 한참을 옆에서 칭얼거리면서 매달리는 탓에 짐도 싸지 못한 시점에 집주인이 들어온다. 그러니까 퀼의 아버지가. 

 

  “어이 피터, 집에 친구는 처음이지 않냐?” 

  “그런 말을 또 왜 하는데!” 

  네가 집에 친구를 데려오는 게 처음이라니. 매달 괴짜들이랑 파티를 하고, 사람들에, 친구들에 둘러싸여서 놀 것 같이 생겨서는. 죽인지 파스타인지 모르겠는 제 몫의 음식을 스푼으로 뜨고 내려두길 반복한다. 저에 대해서 크게 묻지 않는 네 가족은 생각보다 더욱 단란했다. 

 

  “로켓이라고 했냐? 그래, 술은 어른한테 배우는 거다!” 

  “아, 왜 그러는데! … 그, 나도 한 캔 줄 거지?” 

 

  투닥거리는 부자를 바라보다 보니, 제 앞으로 맥주도 한 캔이 놓인다. 지금 성인이, 그러니까 부모가 자식 친구한테 술도 권하는 건가? 제가 생각한 정상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나부터가 정상성에서 벗어난 존재인데 이정도야 뭐. 술을 아예 안 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와 함께 마셔본 것은 처음이었다. 두어 캔 정도 들어가고 나니 퀼은 졸립다며 방에 먼저 올라갔다. 무책임한 새끼. 지금 지 아빠랑 같은 반 애만 두고 올라간 거지? 저도 이만하면 된 것 같다며 짐을 챙기고 있었는데 손목이 잡힌다. 

 

  “담배 배워본 적 있냐? 없으면 옆에서 구경이나 하고.” 

  “… 한 대 주시면, 뭐.” 

  “새끼, 마음에 드네.” 

 

  정원에 플라스틱 의자를 끌고 나가서는 나란히 앉아본다. 미주리의 탁 트인 하늘은 까만 하늘을 더욱 잘 보이게 한다. 하늘이 높아보인다. 얇게 말린 담배가 손가락 사이에 쥐어진다. 아들 친구한테 담배를 가르쳐줘도 되는 건가, 싶지만 딱히 거절하고 싶진 않았다. 투박한 손으로 건네는 담배에 불이 붙고 매캐한 연기가 올라온다. 가볍게만 마셔도 꽤 씁쓸하다. 그렇다고 해서 기침을 할 정도는 아니었고. 

 

  “피터가 친구를 데려온 게 처음인데. 넌 보자마자 날 좀 닮은 것 같아서 말이야.” 

  “예?”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굳이 캐묻고 싶지도 않았다. 술에 취한 건지, 뭔지. 그나저나 친구도 많은 새끼가 왜 친구를 집에 안 데리고 온 건지. 의문이 들지만 굳이 캐묻고 싶지 않다는 생각의 연속이었다. 

 

  “피터 엄마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나고, 한참 정신 못 차리고 사는 어린 녀석을 데리고 와서 키운 건데. 어찌나 작고 뼈밖에 없던지. 개구멍을 매번 드나들어서, 저기 보이냐? 울타리가 남아나질 않았어. 개구멍 막아두면 뚫고 집 밖으로 도망가고, 막아두면 도망가고. 짜식, 누굴 닮아서 잽싸서는.” 

  남의 집 가정사를 이렇게 읊어도 되는 것인가, 이렇게 초면의 미성년자에게 다 읊어도 되는 것인가. 담배가 다 타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는 저녁 공기를 가르며 제게 들려온다. 네게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편견으로 잔뜩 포장된 것이었다. 부모님의 이혼과 사망, 그리고 삼촌—피가 섞인 삼촌이 아닌지도 모르겠다—을 아버지라 부르며 커온 환경. 온통 제가 들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는 이야기들이었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아버지, 그러니까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아저씨—정확한 관계는 잘 모르겠지만—는 널 죽을만큼 사랑해서 구김 없이 키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거 하나만큼은 정확했다. 

  “피터를 잘 부탁한다, 학교든 뭐든.” 

  “….” 

  두어 번 어깨를 두드리며 일어난 뒷모습을 바라본다. 어둠이 잔뜩 깔린 하늘 아래에 그 등이 꽤나 넓어보인다. 나한테도 이런 사람이 있었더라면. 구김 없이 해사한 너는 이 등 아래에서 컸구나. 부러웠고, 시기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널 대하는 것이 바뀌진 않았다. 오해라는 포장지가 벗겨졌을 뿐이지 그렇다고 널 동정하지도, 네게 더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다. 그러던 우리가 조금 바뀌게 된 시점은, 그래. 날 닮았다고 하던 아저씨의 사고였을까. 

  장례식장은 북적였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잔뜩 찾아왔고 그들이 전부 떠난 시점에는 퀼과 나만이 집안에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친한 친구도 아니고, 아무런 관계도 아닌 내가 이곳에 왜 왔는지는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했다. 왜? 내가 거길 왜? 세상의 모든 것에는 답이 있지만 이것만큼은 답이 나오지 않는 함수였다. 언젠가 셋이 함께 앉아있었던 주방의 테이블에 앉아, 제 몫의 음식을 스푼으로 뜨고 내려두길 반복한다. 맛이 조금 변했다. 

 

  “야, 짜다. 너 음식 졸라 못한다.” 

  “알아, 이 새끼야….” 

  퉁퉁 부은 눈으로 숟가락질을 하다가 피식 웃으면서 수저를 내려둔다. 웃기게도 서로의 행동이 같은 시점에서 이루어진다. 짜고 맛도 없는 파스타를 전부 비워내고 나서 설거지를 할 즈음. 제 눈높이에 있는 찬장에서 얇게 말린 담배를 발견한다. 

 

  “야, 너 담배 태우냐?” 

  “… 아니. 그냥 너 피우는 거 구경할란다.” 

  얇게 말린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쥐고 불을 당긴다. 이전보다 조금 더 자연스레 연기를 마시고 뱉길 반복하니 그리 멀찍이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제 뒤에서 네 목소리가 들린다. 

 

  “너 뒷모습 욘두 닮은 거 아냐?” 

  “뭔 소리야.” 

  “… 뒤 돌지 말고 그대로 좀 있어주라….” 

  내가 그의 뒷모습을 닮았을 리가. 난 그렇게 듬직하지도, 다정하지도 않은 새끼인데. 그래도 네 말에 따라 뒤를 돌지 않은 채로 하늘을 올려본다. 미주리의 탁 트인 하늘은 까만 하늘을 더욱 잘 보이게 한다. 하늘이 높아보인다. 아저씨, 이 세상 물정 모르는 새끼 두고 혼자 어딜 가세요. 책임감 졸라 없어…. 아껴태우던 담배가 전부 타들어가고 나서도 쉽게 몸을 돌리지 못했다. 작게 들리는 울음소리가 너무 약하게 들려, 마주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자고 간다.” 

  “… 응, 자고 가.” 

 

  저걸 어떻게 혼자 두고 가. 아저씨도 그런 마음이었어요? 저 새끼 혼자 못 두겠어서 키운 거예요? 남한테 온정을 베푸는 성격도 못 되었고, 마음을 주는 스타일도 아니었지만. 아저씨의 말대로 나는 그를 조금 닮은 것인지 너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네 집에서 느껴진 따스함 때문에 배로 차갑게 느껴졌기 때문에. 

소파에서 자겠다며 몸을 눕힌지 30분 정도 지났으려나.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저 새끼가 걱정되어서 아저씨가 부활한 게 아니라면, 이 소리는 퀼이 낸 것이겠지. 귀찮은 얼굴로 몸을 일으키니 못생긴 얼굴이 보인다. 

 

  “… 같이 자도 돼?” 

  “나이가 몇이냐…. 오늘만이다.” 

  침대에서 같이 자는 건 아무래도 그림이 이상하니까, 애초에 침대가 더러워서 거기서 자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었고. 그나마 소파가 좀 널찍해서인지 몸을 구기니 함께 잘 정도의 공간은 되었다. 목석처럼 곧게 누운 저와는 달리, 옆으로 조금씩 붙어오면서 팔을 제 몸 위로 올리는 것이 영락없이 개 같았다. 말 그대로 개. 돼지 새끼가 아니라, 이거… 개… 였네. 

 

  “징그러워. 떨어져, 새꺄.” 

  “나 따뜻해야 잘 잔단 말이야….” 

  애새끼, 진짜. 아저씨, 애를 이렇게 애새끼 같이 키우면 어떡해요? 졸라 무책임하네…. 못 잔다고 칭얼거리는 놈에게 담요를 덮어주고는 네게서 몸을 돌려 눕힌다. 제가 몸을 돌려눕힌지 30초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등 뒤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아, 졸라… 가지가지 하네. 다시 몸을 돌려눕혀서는 네 몸 위로 투박한 제 손을 올린다. 가볍게 토닥이는 손길을 주자마자 울음이 멎으며 잠에 드는 소리가 들린다. 단순한 새끼 아니야, 이거? 미간을 잔뜩 좁혀둔 채로 아무것도 모른 채로 잠이 든 널 내려본다. 뽀얗고, 머리는 곱슬거리고, 매번 시끄럽게 조잘거리는 입은 이제야 다물려있고. 평소답지 않은 네 얼굴에 주먹을 내리꽂고 싶었다. 그러면 왜그러냐며 왁왁거리면서 다시 내게 시끄러운 소리를 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너를 동정하는 것도 아니었고, 너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너를 사랑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단순한 십대의 호기심도 아니었고, 하룻밤의 가벼운 감정도 아니었으며, 너와의 관계를 진전시킬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든 것이 부정의 형태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깊게 잠든 듯한 네게 입을 짧게 맞춘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그날은 네가 조용했고, 주변도 적막했으며, 미주리의 밤이 짙게 내려앉았기 때문에. 아무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 일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필 그때 창문으로는 하얀 달빛이 들어와서는. 붉게 달아오른 네 귓가가 보였다. 아저씨, 지금 눈치 주시는 거예요? 네가 잠들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네 뺨을 손가락으로 눌러본다. 

 

  “야, 깼냐?” 

  “… 으음….” 

  “눈 떠, 새꺄.” 

  “… 아 왜, 자는데.” 

  “자는데 대답은 어떻게 하는데.” 

  “….” 

 

  슬쩍 떠지는 눈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빛을 받은 녹안이 투명해보인다. 제 시선을 피하지도 않으면서 조용히 있는 너라니. 다시 한번 고개를 내려 입을 맞추니 눈이 파르르 감기면서 입이 다물린다. 아저씨, 저는 아저씨를 어디까지 닮은 건데요. 어디까지 닮아서는 이 새끼를 데리고 오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데요. 창문으로 들어오는 하얀 달빛을 받으니 괜히 죄스럽다. 가볍게 맞닿았던 말랑한 입술이 떨어지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손을 뻗어 커튼을 쳐, 달빛이 둘에게로 쏟아지는 것을 가린다. 너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욱 따스했고, 유약했으며, 사랑스러웠다. 

 

3. 

 

  그해는 더욱 바빴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 때문에 집을 옮겼어야 했고, 네 짐도 함께 옮기며 네 구직도 알아보아야 했다. 대학을 진학하지 않은 너는 카페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며 지원을 했고, 곧잘 붙어서는 일을 잘 배워나갔다. 순진하고 착해빠져서는 네가 혹시라도 손님들에게 상처를 받거나, 상사에게 휘둘리진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마음에 안 드는 새끼 있으면 커피에 침 뱉어버려.” 

  “너 내가 일하는 게 마음에 안 드냐, 어? 나도 생활비 정도는 벌고 싶다니까?” 

 

  마음대로 하라면서 손을 휘적였다. 너는 머리가 좋아서 레시피도 잘 외웠고, 손님들의 얼굴도 잘 외워서 빠른 시간 내에 매니저까지 되었다. 예쁘장하게 앞치마를 하고, 카라티까지 챙겨 입은 너를 구경하러 없는 시간을 내기도 했다. 카운터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논문을 쓰다가도 네게 추근덕거리는 새끼들이 있으면 손을 봐주기 일수였으며 네가 일하는 카페의 직원들이 전부 저를 알아볼 정도로 자주 가곤했다. 같은 랩 소속의 연구원들도 크게 제 속을 긁지도 않았고, 나쁘지 않은 분위기였다. 세상이 이렇게 내 편을 들어주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심을 하긴 했지만. 그렇게 오래 하진 않았다. 그러니까… 다들 말하는 행복이라는 게 이런 것 같아서.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여느 날들과 다르지 않게, 랩에서 밤을 샐 작정을 하다가 주차장 근처에서 얇게 말린 담배를 태울 즈음. 네가 저 멀리서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또 제게 케이크와 커피 같은 디저트를 가져다주려고 하는 것이겠지. 

 

  “헉헉거리는 건 침대에서만 하랬지.” 

  “너 먹으라고 가져왔지! 그리고 목소리 좀 낮춰, 미친. 다 들리겠다.” 

  “들으라고 하는 건데?” 

  “이 새끼가….” 

  “뭘 또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 

  “네가 이거 잘 먹잖아.” 

  “졸라 달아.” 

  “잘만 먹으면서 또 지랄 시작한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보다가 발꿈치까지 들어가며 제게 입을 짧게 맞추고 돌아서는 널 붙잡고는 입술을 벌려내며 혀를 얽는다. 방금까지 담배를 태우던 제가 너와 입을 맞추니 상대적으로 입이 달게 느껴진다. 네가 가장 단 것도 모르고 매번 내게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을 가져다 준단 말이야. 나는 네가 가져다주는 디저트보다, 그 디저트를 가져오는 네가 더 좋은데. 물론 그 무엇도 입 밖으로 낸 표현들이 아니지만 너와 타액을 섞어내며 제 애정을 전부 넘겨준다. 가로등 아래에서 보아도 네 얼굴을 잔뜩 상기되어있었고, 통통한 입술은 타액으로 반들거린다. 씨발, 이걸 어떻게 혼자 집에 보내. 잠시 기다리라며 로비에 세워두고는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가서는 문을 세게 연다. 어차피 제가 빠져도 돌아가는 프로젝트이니까. 네가 가져온 디저트를 뇌물 삼아, 이른 퇴근을 감행한다. 평소에는 너무 바빠서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는데, 오늘은 왠지 모든 것을 뒤로하고 널 안고 싶었다. 다음 프로젝트 때에 몸을 좀 갈아넣지 뭐, 하는 생각과 함께 네 손을 잡아끌고 곧바로 집으로 향한다. 

 

  “… 로켓, 우리 콘돔 없어.” 

  “… 안에 안 할게. 응?” 

  “… 네가 한두 번 그 소리 하냐? 어?” 

  “어어, 나 믿지?” 

  “지랄, 진짜….”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네 목덜미에 입을 묻고 손은 다급하게 버클로 향한다. 네게서는 네 향과 동시에 달큰한 디저트의 향이 난다. 이름 모를 디저트와 너는 왜 그렇게 잘 어울려서는. 열이 오른 서로를 정신없이 탐하며 온 집안을 휘젓고 돌아다닌다. 그리 큰 집도 아니었기 때문에 온 구석에는 서로의 흔적이 가득했다. 오늘은 현관이었고, 엊그제는 욕실이기도 했으며, 언제 한 번은 주방이기도 했다. 

 

  “너 취향 졸라 변태 같아. 현관이 뭐냐, 현관이?” 

  “즐. 너도.” 

  “옆집에 들렸으면 어떡해.” 

  “귀 잘라버릴까?” 

  “말을 말자….” 

  “왜, 진심인데. 네 목소리 꼴려서 다른 새끼들이 들으면 가만 안 둘 것 같음.” 

 

  정말 들렸다면, 얼굴도 모르는 이웃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며 입술을 잘근거리자 네 손가락이 불쑥 제 입술 사이로 자리한다. 자연스레 네 손가락을 훑어올리며 시선을 맞춘다. 어둑한 조명 아래에서 네 녹안이 곧게 저를 바라본다. 

 

  “왜 핥아!” 

  “꼴려서.” 

  “안 꼴릴 때가 있냐? 어?” 

  “음…. 소리 지르니까 꼴린다. 한 판 더 하자.” 

  “아, 이 새끼가!” 

  함께 이불을 덮어쓰고는 몇 번이고 입을 짧게 맞추다보니 기력을 다 쓴 듯한 네가 제 품 안에서 잠에 든다. 안정적이고 고른 숨소리가 반복된다. 네 머리를 쓰다듬고 조금 더 제 품으로 당겨안으며 단단히 끌어안는다. 너는 어쩜 이렇게 따스하고 말랑한지. 매번 이런 일상이 반복되길 바라면서 저 또한 눈을 감아본다. 내일은 여행을 가자고 해볼까.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네가 아무리 신음을 내지르고, 내 이름을 불러도 나만 들을 수 있는 곳으로. 

 

  “퀼, 여행 갈래?” 

  “어디로?” 

  “글쎄. 넌 어디 가고 싶냐?” 

  “… 우주?” 

  “지랄한다.” 

  “장난이고, 음….” 

  “미주리?” 

  “… 가봤자 아무도 없는데 뭐. 캘리포니아 어때? 하늘 보고 싶다.” 

  “뭐, 그래.” 

  너는 여전히 그곳을 가는 것을 싫어한다. 우리의 십대가 녹아있는 곳이지만 동시에 네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아픔을 겪은 곳이기도 하니까. 네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수긍하며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여행 계획을 세워본다. 첫날에는 어디에 가고, 둘째날에는 어디에 가고. 프로젝트 때문에 조금 빡빡한 일정이 될 것 같았지만 일주일 정도는 너와 함께 여행을 다녀오고 싶었다. 들뜬 네 모습도 보기 좋았고, 함께 무언가를 계획하는 것 또한 행복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조금 더 열심히 일하자며 서로가 한참 바쁜 시간을 보냈다. 캘리포니아 여행을 가면 우리가 그동안 한 번도 챙기지 못했던 크리스마스도 챙겨볼 셈이었다. 

  크리스마스까지 챙기려고 했던 본격적인 여행날의 아침. 갑자기 현관에서 쓰러지는 너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향하니, 유전병이 있다고 한다. 유전병, 그거 하나로 온전한 논리적 설명이 될 리 없었다. 

  “그러니까, 씨발…. 뭐가,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건데요? 얘 졸라 착해요, 아무것도 모르고, 내가 가르쳐줘야만 아는 앤데 왜, 씨발 진짜…. 왜 얘가 이러고 누워있어야 하냐고요. 정확히 뭔데요, 예?” 

  제가 욕을 하고 화를 낸다고 해서 바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부계 유전이라는 말 밖에는 해줄 수 없다는 전문의의 말에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건 어머니 쪽에서는 잘 유전되지 않는데, 아버지 쪽이라면서. 아버지가 이야기를 따로 해주지 않았냐고, 미리 병원을 왔으면 초기에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는 말들이 귀를 빠져나간다. 씨발, 친부라는 새끼는…. 제게 행복이라는 것이 걸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이토록 처참히 밟힐 줄은. 너는 며칠을 그렇게 의식이 없는 상태로 누워있다가 다시 내게 녹안을 보여주지 못했다. 

 

4. 

 

  그 이후로 어떻게 살아갔는지 모르겠다. 기계 같은 새끼가 맞았던 것인지, 두어 달 정도 잠수를 탔다가 평소처럼 사람들 앞에 나섰다. 조금 핼쑥하진 것을 제외하고는 평소와 같았다. 미친듯이 일을 하며 지내다, 제 이메일을 확인하고는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스타크 인더스트리] 기억 복원 기술(가) 개발 연구원 모집 

  대기업이라면, 주목을 받는 곳이라면 꺼렸지만. 제 기억을 바꾸고, 제 기억 속의 너를 다시 한번만이라도 더 보고 싶다는 생각에 곧바로 연락을 취한다. 제가 그 연구에서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실제로 떨어지지도 않았다. 몇몇은 스타크 인더스트리라는 대기업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들떠보이는 얼굴이었다. 아, 졸라 마음에 안 든다. 네가 없으니 다시 이 모든 사람들이 십대 때 마주한 덜 떨어진 같은 반 친구들처럼 보인다. 네가 없으니 세상이 삭막하다. 그러니까 나는 이 기술을 배우고, 체득해서 널 다시 만나야겠다. 

  어느 정도 기반이 잡혀있는 사업이었고 연구였다. 이 사업을 주관한 스타크라는 작자는 이미 이 기술에서 관심을 뗀 지 오래라고는 하지만 수요가 꽤 있어서 사업비는 끊기지 않은 것 같았다. 다른 이들이 높은 노동 강도와 복잡한 메커니즘에 떨어져나가길 몇 년. 사업비도 간당간당 한 시점이 될 즈음 연구실에 남아있는 것은 저 하나뿐이었다. 피험자를 모으려고 해도 구해지지 않았고, 딱히 구할 생각도 없었다. 내가 직접 하면 되는 것이니까. 

  엉성하게 만들어진 머리띠를 쓴다. 기계도 직접 제가 켜야 했지만 문제될 것은 없었다. 나는 이 기계를 벗을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버튼을 누르고 딱딱한 실험대에 누워서 눈을 감아본다. 벽안이 닫히며 저를 맞이하는 것은 온통 검은 어둠뿐이었다. 네가 이런 검은 밤에 박혀있는 별을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찰나의 생각이 지나고 나니 제 앞은 다시 환히 밝아진다. 익숙한 교실이었고, 익숙한 소음이다. 

 

  “아, 졸라 시끄럽네.” 

  “야. 넌 연말에도 그런 소릴 해야겠냐?” 

  “… 퀼?”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언제부터 제 이름을 알았냐며 의아해하는 얼굴에 곧장 입을 맞추고 싶었다. 성공했다. 나는 너를 다시 불러내었다. 감정이 앞서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지금부터 차근차근 너와의 기억을 되짚으며 너를 곱씹을 것이다. 감정이 앞서서 이 모든 것을 뒤엎고 꼬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나는 너와 과학 시간에 같은 조가 되었고, 모든 것은 너무나도 수월했다. 과제를 빠르게 마무리하고는 너를 한참 빤히 바라본다. 네가 이렇게 내 앞에서 움직이고 있다니. 조심스레 저녁을 먹고 가겠냐는 네 물음에 곧바로 수긍한다. 그러면 곧 아저씨가 돌아올 것이고, 우리는 셋이서 맥주를 기울일 것이며, 네가 먼저 올라가서 잠이 들고, 나는 아저씨랑 잠깐 시간을 보내겠지. 

 

  “어이 피터, 집에 친구는 처음이지 않냐?” 

  “그런 말을 또 왜 하는데!” 

  아저씨, 아저씨가 집을 비운 이후로는 제가 매일 왔어요. 나중에는 제 방 빼고 그냥 같이 살았어요. 얘는 제가 없으면 안 됐고, 저도 얘가 없으면 안 되어서요. 그렇게 매일 저녁마다 같이 파티를 즐기고, 아저씨가 가르쳐준 맥주도 마시면서, 우리는 마당에 나가서 하늘을 올려보고, 아저씨 생각을 했어요. 흘러가는 사소한 대화 내용마저 전부 같았다. 제 기억 속에서 소실된 것이 없었는지. 너에 대한 모든 것이 무의식 저 편에서도 상영되고 있었는지 제 기억과 모두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죽인지 파스타인지 모르겠는 제 몫의 음식을 스푼으로 뜨고 내려두는 제 행동 또한 같았다. 그 무엇 하나 제 기억과 다르게 굴고 싶지 않았다. 

 

  “로켓이라고 했냐? 그래, 술은 어른한테 배우는 거다!” 

  “아, 왜 그러는데! … 그, 나도 한 캔 줄 거지?” 

  투닥거리는 둘을 바라보니, 제 앞으로 맥주 한 캔이 놓인다. 아저씨가 이 싸구려 맥주를 가르쳐준 이후로 우리 둘은 암묵적으로 이것만 마시는데. 기억 속의 너는 그때의 기억처럼 두어 캔 정도 들어가고 나니 졸립다며 방에 먼저 올라간다. 정적 속에서 마주한 아저씨는 그때와 같은 눈빛이다. 아, 어른이 되고 마주하니 이 눈빛이 더욱 무겁다. 저도 이만하면 된 것 같다며 짐을 챙기는 척을 하고 있으니 역시나 손목이 잡힌다. 

  “담배 배워본 적 있냐? 없으면 옆에서 구경이나 하고.” 

  “… 한 대 주시면, 뭐.” 

  “새끼, 마음에 드네.” 

  정원에 플라스틱 의자를 끌고 나가서는 나란히 앉아본다. 미주리의 탁 트인 하늘은 까만 하늘을 더욱 잘 보이게 한다. 하늘이 높아보인다. 얇게 말린 담배가 손가락 사이에 쥐어진다. 익숙한 담배이다. 투박한 손으로 건네는 담배에 불이 붙고 매캐한 연기가 올라온다. 이제는 폐 깊은 곳까지 연기를 마시고 뱉길 반복한다. 제가 늘 피우는 담배이지만 오늘은 왠지, 지금 아저씨가 건넨 담배는 왠지, 아저씨의 향이 섞여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피터가 친구를 데려온 게 처음인데. 넌 보자마자 날 좀 닮은 것 같아서 말이야.” 

  “… 그래요?” 

  퀼도 매번 그 소리를 했어요. 제가 담배를 태울 때마다 제 등 뒤에 와서 구경하다가 들어가요. 자기는 소리 안 내고 나왔다고 생각하는데, 다 들리고 가끔은 뒤에서 안길 때도 있어요. 아저씨, 왜 그렇게 빨리 가서 애새끼 울렸어요? 수많은 속의 말들이 뒤섞인다. 말을 참아내는 것은 잘하니까, 조금 씁쓸한 얼굴로 아저씨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제 기억 속이니 무엇도 바꿀 수 없으니까. 

 

  “피터 엄마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나고, 한참 정신 못 차리고 사는 어린 녀석을 데리고 와서 키운 건데. 어찌나 작고 뼈밖에 없던지. 개구멍을 매번 드나들어서, 저기 보이냐? 울타리가 남아나질 않았어. 개구멍 막아두면 뚫고 집 밖으로 도망가고, 막아두면 도망가고. 짜식, 누굴 닮아서 잽싸서는.” 

 

  맞아요, 아저씨네 애새끼 엄청 잽싸요. 카페에서 일하는데요, 실수한 거 있어도 바로바로 대처 잘 하고, 최연소 매니저래요. 고객들한테 친절해서 칭찬도 많이 받고, 일하던 중간에도 저한테 잽싸게 와서 커피 주고 갔어요. 아저씨는 얘가 내린 커피 못 마셔봤죠? 그러니까 우리랑 오래 살지 그랬어요. 아저씨를 탓하며 속으로 이야기를 건넬 즈음 담배가 다 타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는 저녁 공기를 가르며 제게 들려온다. 기억으로 복구한 아저씨도 여전히 널 죽을만큼 사랑해서 널 이렇게나 구김 없이 키웠구나. 

 

  “피터를 잘 부탁한다, 학교든 뭐든.” 

  “… 그럴게요.” 

 

  두어 번 어깨를 두드리며 일어난 뒷모습을 바라본다. 어둠이 잔뜩 깔린 하늘 아래에 그 등이 꽤나 넓어보인다. 네가 바라본 내 등이 이랬을까. 여전히 어디가 닮았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저 아저씨가 조금 더 오래 있었더라면. 나도 이렇게 아저씨가 그리운데 너는 오죽했을까. 나한테도 아저씨가 있었더라면, 구김 없이 해사한 너를 조금 더 여유롭게 사랑하며 예뻐했을 텐데. 그리고 어김없이 그날이 다가왔다. 

  장례식장은 북적였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잔뜩 찾아왔고 그들이 전부 떠난 시점에는 퀼과 나만이 집안에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너는 친한 친구도 아닌 내가 여기에 왜 앉아있는지, 아무런 관계가 아닌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모르겠지. 셋이 함께 앉아있었던 주방의 테이블에 앉아, 제 몫의 음식을 스푼으로 뜨고 내려두길 반복한다. 네가 해주는 맛이 여전했다. 

  “야, 짜다. 너 음식 졸라 못한다.” 

  “알아, 이 새끼야….” 

  퉁퉁 부은 눈으로 숟가락질을 하다가 피식 웃으면서 수저를 내려둔다. 웃기게도 서로의 행동이 같은 시점에서 이루어진다, 마치 서로의 행동이 이때 나올 것이라는 걸 안 것처럼. 나는 물론 알고 내려둔 것이지만. 짜고 맛도 없는 파스타를 전부 비워내고 나서 설거지를 할 즈음. 다시 한번 찬장에서 얇게 말린 담배를 발견한다. 

  “야, 너 담배 태우냐?” 

  “… 아니. 그냥 너 피우는 거 구경할란다.” 

  얇게 말린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쥐고 불을 당긴다. 평소처럼 연기를 마시고 뱉길 반복하니 그리 멀찍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제 뒤에서 네 목소리가 들린다. 

  “너 뒷모습 욘두 닮은 거 아냐?” 

  “… 뭔 소리야.” 

  “… 뒤 돌지 말고 그대로 좀 있어주라….” 

  네가 이 말을 할 때에 묻고 싶었다. 내 어디가 그렇게 그의 뒷모습을 닮았냐고. 난 그렇게 듬직하지도, 다정하지도 않은 새끼인데. 그래도 나는 네 말을 거역할 수 없기에 네 말에 따라 뒤를 돌지 않은 채로 하늘을 올려본다. 오랜만에 마주한 미주리의 탁 트인 하늘은 까만 하늘을 더욱 잘 보이게 한다. 하늘이 높아보인다. 아저씨, 이 세상 물정 모르는 새끼 제가 데리고 잘 살 거예요. 그러니까, … 데리고 가지 마세요. 이번에도 아껴태우던 담배가 전부 타들어가고 나서도 쉽게 몸을 돌리지 못했다. 작게 들리는 울음소리가 너무 약하게 들려, 마주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자고 간다.” 

  “… 응, 자고 가.” 

  소파에서 자겠다고 이야기를 하면 네가 30분 즈음 후에 내려올 것을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계단이 삐걱거렸고 네가 곧 제 옆으로 다가온다. 한참 울어서 더 청초해진 예쁜 얼굴이 보인다. 

  “… 같이 자도 돼?” 

  “나이가 몇이냐…. 오늘만이다.” 

  목석처럼 곧게 누워있었지만 네가 제게 붙어오자 곧바로 고개를 돌리며 널 안을까 고민한다. 따뜻한 네 온기가 그리웠다. 항상 이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고 이 순간의 널 잊은 적이 없으니까.  

  “… 징그러워. 떨어져, 새꺄.” 

  “나 따뜻해야 잘 잔단 말이야….” 

  조금 더 훌쩍이던 소리가 들리고는 머지 않아 잦아든 숨소리가 들린다. 너는 잠에 들면 이것보다 조금 더 작은 숨소리를 내. 특히 내가 옆에 있으면 편안해서인지 더 안정적이고 편한 소리를 낸단 말이야. 지금의 너는, 이 어린 너는 내 앞에서 자는 척을 하는 거겠지. 조금은 들쑥날쑥한 숨소리를 듣다가, 입을 짧게 맞추고는 하얀 달빛이 내려올 즈음 네 뺨을 손가락으로 눌러본다. 

  “야, 깼냐?” 

  “… 으음….” 

  “눈 떠, 새꺄.” 

  “… 아 왜, 자는데.” 

  “자는데 대답은 어떻게 하는데.” 

  “….” 

 

  슬쩍 떠지는 눈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빛을 받은 녹안이 투명해보인다. 내가 이야기를 해주었던가. 나는 네 녹안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초록색이 좋아졌다고. 제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조용하게 저를 바라보는 네게 다시 입을 맞춘다. 쏟아지는 달빛을 커튼으로 가리며, 너와 혀를 얽고 숨을 앗아가며 밤을 보낸다. 서툴었던 그때와는 달리, 네가 더욱 예민하게 느끼는 곳들을 자극하고 탐하며 너를 가득 안는다. 너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따스했고, 유약했으며, 사랑스러웠다. 

  미주리의 네 집에서 함께 보낸 일상이 지나치게 소중했다. 시간을 멈추고 싶었지만 한 번 상영된 제 기억은 멈출 수 없었다. 네 집으로 짐을 옮기고, 함께 네 침대에서 잠에 들었으며, 네가 해주는 뭔가 맛이 이상한 밥을 먹고 학교에 함께 가는. 정말 별것도 아닌 순간들이 지나치게 벅차오른다. 네가 하는 말 하나하나가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다. 미래를 바꿀 수도 없으니 더 없이 착잡했고 심장이 답답했다. 기계 같은 새끼인 내가 답답할 수가 있었다니. 너는 늘 내게 새로운 것을 알려준다, 기억 속의 너마저도. 그러다가 대학 때문에 그 근처로 집을 옮기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좋아하는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낼 수는 없었다. 바쁜 것은 기억 속에서도 여전했고 새해가 되어서야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부루퉁한 얼굴도 잠시. 제가 새롭게 얻은 방에 함께 지내고 싶다며 방방거리는 너의 이사를 돕느라 한참 정신이 없었다. 너는 또다시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채로 근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마음에 안 드는 새끼 있으면 커피에 침 뱉어버려.” 

  “너 내가 일하는 게 마음에 안 드냐, 어? 나도 생활비 정도는 벌고 싶다니까?” 

 

  마음대로 하라면서 손을 휘적였다. 너는 머리가 좋아서 레시피도 잘 외웠고, 손님들의 얼굴도 잘 외워서 매니저가 되었다. 내게 커피를 가져다주는 것도 여전했고, 그런 널 걱정하면서도 타박하는 저 또한 여전했다. 행복하다, 내 기억 속의 나도, 너도 너무 행복해보인다. 지금의 나는 쥘 수 없는 것인데. 의심하고 싶지 않은 행복의 끝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야, 나는 여기까지 보고 싶지 않아. 제 의지로 쓴 머리띠였지만 이 상영을 멈추는 방법까지는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가볍게 몸부림을 쳐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속하게 상영되는 삶이 이어진다. 어김없이 네 앞에 선 나는 네게 하염없이 침울한 목소리로 묻는다. 

 

  “… 퀼, 여행 갈래?” 

  “어디로?” 

  “… 글쎄. 넌 어디 가고 싶냐?” 

  “… 우주?” 

  “… 그럴까?” 

  “장난이고, 음….” 

  “… 미주리?” 

  “… 가봤자 아무도 없는데 뭐. 캘리포니아 어때? 하늘 보고 싶다.” 

  차라리 우주를 데려가달라고 하지 그랬어. 끝까지 우기지 그랬어. 캘리포니아에 가는 것이 신이 난다며 방방 뛰는 네 뒤에서 긴 한숨을 내쉰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이 전부 좆같았다. 

  “우리 그때 가면 크리스마스 챙겨보겠다.” 

  “… 그러게.” 

  “처음이지 않아?” 

  “… 그러게.” 

  퀼,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챙기지 못할 거야. 나는 왜 여태까지 너와 크리스마스를 챙기지 않은 걸까. 바쁘다는 핑계를 왜 그렇게 많이 댄 걸까. 나는 네가 크리스마스에 어떤 표정을 짓는지 몰라…. 네가 어떤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지도 모르고, 네가 어떤 표정으로 내 선물을 뜯는지도 모르겠어. 나는 그런 널 본 적이 없어서 이 빌어먹을 기계를 써도 크리스마스의 너를 볼 수가 없어, 퀼…. 

  … 어김없이 그날이 다가온다. 한 걸음 뒤에 서서 현관에서 쓰러지는 너를 바라보았고 들쳐 업고 병원으로 향해도 같은 진단이 나올 뿐이었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뿐인 제 녹안을 다시는 볼 수 없었고 눈가가 흥건해진 채로 눈을 떴을 뿐이다. 이 좆같은 기계. 이 도움도 안 되는 기계. 고철 덩어리. 이정도는 내가 바꾸면 된다. 나는 이 기계의 처음부터 끝까지 아는 사람이니까, 씨발 이런 결론이 나지 않게 바꾸면 돼. 네 모든 것은 내 의식과 무의식에 뿌리박혀있으니까, 내 기억을 기반으로 너를 다시 만들어내면 돼. 

 

5. 

  그 좆 같은 기억을 몇 번이나 다시 꺼내보았는지 모르겠다.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펀딩은 끊긴지 오래였고, 개인 펀딩으로 근근하게 연구를 이어갈 뿐이었다. 기억하고 있는 것을 넘어서서 과거의 기억을 조작해, 스스로에게 이식하는 것. 이 연구의 가장 최종적인 목표였다. 그리고 나는 그 조작된 기억 속에서, 조작된 세상 속에서 영원히 살 셈이었다. 내 육신이 썩어도, 시간이 속절 없이 흘러도. 다 상관없었다. 그렇게 그 연구에만 몇 년을 매달렸다. 너에 대한 것을 잊지 않으려고 연구 중간중간에도 그 좆 같은 기계를 머리에 써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생생하게 너의 모든 것이 기억났고, 뼈에 새겨가며 제 연구의 의의를 복기했다. 네가 할 말들을 전부 외울 지경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 연구가 성공하기만 하면 나는 네가 정해놓은 대사를 넘어서서 함께 할 것이니까. 우린 새로운 장을 열어갈 것이고, 캘리포니아 여행도 갈 거고, 크리스마스도 챙길 거잖아. 그렇지, 퀼? 

 

  “… 퀼, 여행 갈래?” 

  “어디로?” 

  “… 글쎄. 넌 어디 가고 싶냐?” 

  “… 우주?” 

  “… 그럴까?” 

  “장난이고, 음….” 

  “… 미주리?” 

  “… 가봤자 아무도 없는데 뭐. 캘리포니아 어때? 하늘 보고 싶다.” 

  “… 뭐, 그래.” 

  “우리 그때 가면 크리스마스 챙겨보겠다.” 

  “… 그러게.” 

  “ 처음이지 않아?” 

  “… 처음이지. 떨리지 않아?” 

  웃음으로 답이 돌아온다. 여기서부터 나는 변칙을 줄 것이다. 익숙한 시나리오라면 곧 너는 현관에 쓰러질 것이지만, 내가 쓴 시나리오는 달랐다. 내가 조작해서 내 머리에 넣은 기억에서는 네가 쓰러지지 않아. 퀼, 쓰러지지 않아 너는. 익숙하게 캘리포니아 계획을 짜고, 그날이 밝았다. 새벽 같이 일어나 곤히 자고 있는 너를 내려본다. 숨소리가 커졌다가 작아진다. 깊게 잠들지 않은 것인지, 곧 깨어나려고 하는 것인지. 입술을 내려주면서 단잠에서 너를 깨워본다. 

 

  “… 로켓.” 

  “여행 가야지, 우리. 크리스마스도 챙기기로 했잖아.” 

  알겠다며 몸을 일으키는 네 뒷머리가 잔뜩 눌려있다. 여기까지도 기억이 같다. 너는 곧 씻고 나오면서 우스꽝스러운 시리얼 그림이 그려진 옷을 입을 것이고 함께 아침으로 샌드위치를 먹고는, … 현관을 함께 걸어서 나설 것이다. 네가 씻는 동안 샌드위치를 정갈하게 준비해둔다. … 씻고 나온 너는 우스꽝스러운 시리얼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가 아닌, 예쁘장한 니트를 입고 있다. 저것도 내가 예전에 사준 건데. … 제가 예상한 변칙은 아니었지만 지금부터 변칙이 시작되려고 하는 것인지. 

  “로켓, 우리 오늘 여행가기로 해서 그런가. 꿈 꿨다?” 

  “무슨 꿈? 꿈 잘 안 꾸지 않아?” 

  변칙이다. 너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나인데. 너에 대해 모르는 것이 나온다. 내 실험이 성공했다는 증거였다. 설렘에 미칠 것 같았지만 테이블 아래로 주먹을 꾹 쥔 채 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나 꿈에서 우주 다녀왔어.” 

  “우주 가고 싶다더니. 꿈에서 갔냐? 샌드위치나 먹어.” 

  “아니, 들어봐!” 

  퉁명스레 이야기했지만 네가 조금 더,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해주길 바랐다. 응, 너 우주에 갔구나. 우주에 가는 꿈을 꾸었어.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샌드위치를 내려놓으며 네 이야기를 듣는다. 내가 기억하는 그 목소리로, 네가 들려주는 새로운 이야기를. 

  “꿈에서 네가 라쿤이었어. 한… 이만한? 졸라 귀엽더라.” 

  “좆 같은 꿈이네, 그거.” 

  허벅지까지 왔다며 연신 웃고는 다시 네 목소리가 이어진다. 너는 널 닮은 꿈을 꾸는구나. 지 애인이 어떻게 라쿤이야. 턱을 괴고 너를 바라본다. 너는 역시 신이 나서 웃는 모습이 제일 잘 어울린다. 

  “정확한 건 기억이 다 안 나는데… 우리 같이 우주 여행하는 꿈이었어. 무슨 외계인들이랑 같이 다녔는데, 막 초록색에 파란색에…. 맞다, 말하는 나무도 봄.” 

  “지 같은 꿈만 꿔요, 아주.” 

  동화를 읊어주는 듯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허구이고, 네 꿈이라고는 하지만 묘하게 빠져들어서 계속 듣게 된다. 네 새로운 목소리로 들어서일까. 

  “근데 로켓, 그 외계인들이랑 네가 크리스마스 챙겨줬어.” 

  “그건 꿈이고, 퀼.” 

  “… 피터라고 불러줘.” 

  “… 엉?” 

  “로켓.” 

  “… 왜, 피터.” 

  “이제 그만해도 돼. 나 너랑 크리스마스 보내봤어, … 물론 네가 라쿤이었지만.” 

  “뭔 개소리야, 씨발. 나랑 안 보냈잖아.” 

  “나 네가 그렇게 사는 거 바란 거 아니야.” 

  “지랄하지 마. 너 나랑 오늘 캘리포니아 가서 크리스마스 챙길 거야. 일어나.” 

  “네가 일어나야지, 로켓.”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주방에 있는 식기들을 전부 손으로 쓸어내렸다. 온갖 잡동사니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굉음을 낸다. 그런 와중에도 너는 꼿꼿하게 자리에 앉아서는 나를 바라본다. 분이 식질 않는다. 왜, 왜 프로그래밍 된 너는, 프로그래밍이 되었음에도 이토록 다정해서. 왜 내가 예상하지 못한 대로 다정해서, 너는 얼마나 깊은 다정을 가졌기에 프로그래밍이 되어서도 내가 예상하지 못한 대로 흘러가서. 변수가 얼마나 많은 다정을 가졌으면 내가 이토록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하는지. 너를 또 잊지 못하게 하는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지. 

  “… 로켓, 내가 말 해줬나?” 

  “….” 

  “네 눈을 보면, 네 벽안을 보면 나는 늘 크리스마스라고 생각했어. 붉어서 예쁘고, 크리스마스 하면 붉은 색이 떠오르잖아.” 

  “… 네 눈이 더 예뻐, 피터. 네 녹안을 사랑해서, 네가 그 눈으로 나를 올려본 그 첫 날이 잊히지가 않아….” 

  “나도 마찬가지야.” 

  아이처럼 네 품에 안겨서 한참을 울었다. 아침이 지나고, 해가 떨어지는 밤이 되어도 네가 쓰러지지 않았으니. 제 프로그래밍은 성공했다. 네 다정이라는 변수를 통제하지 못하였지만. 네 앞에서 펑펑 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처음이었다. 제 눈물에 너도 꽤나 당황한 모습이었지만 밤 즈음이 되자 소파에 저를 눕히고는 그 옆으로 함께 몸을 눕힌다. 우리가 처음 이러고 누웠을 때보다 한참은 커버려서, 소파가 비좁다. 아무렴 상관 없었다. 그만큼 널 강하게 끌어안으면 되었으니까. 다신 놓지 않고 싶었으니까. 

  “… 로켓.” 

  “… 응, 피터.” 

  “네 눈 보고 있으니까, 크리스마스 같아.” 

  “… 나랑 같이 크리스마스 보내자, 피터. 제발, 응?” 

  “… 오늘이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돼.” 

  “왜, 25일까지 같이 있어. 응?” 

  네 품에 고개를 파묻으며 고개를 내젓는다. 어리광은 네 몫인데. 나는 어리광을 부리는 널 받아주는 역할이었는데. 온통 제가 프로그래밍한 것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그럼에도 나는 이 기계를 끌 수 없었다. 이토록 다정한 너를 뒤로할 수 없어서. 이런 네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사랑해서. 

  “우린 또 같이 크리스마스를 챙길 수 있어, 로켓. 그러니까.” 

  “….” 

  “우리 다음에 또 보자. 이렇게는 말고. 이건 이제 그만하고.” 

  “… 너 보고 싶어서 어떻게 살아, 씨발….” 

  “모르지 뭐. 진짜 우주에서 만날 지 어떻게 알아.” 

  “지랄….” 

  “… 사랑해.” 

  “… 나도 사랑해, 피터.” 

  “메리 크리스마스, 로켓.”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제 의지로 감고 있던 눈을 뜰 수 있었다. 주변은 어둑했고 제가 누운 자리는 차가웠다. 내게 따스하고 푹신한 곳은 어울릴 리가 없으니까. 그건 온전히 네가 향유해야 하는 것들임이 마땅하니까. 버석하게 마른 얼굴을 가볍게 쓸기를 반복하고는 얼마나 지난지 모를 시간 속에 눕혔던 몸을 일으킨다. 관절은 기름칠이라도 해야 할 것처럼 뻑뻑하다. 그럼에도 너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 웅웅거리며 낮은 소리와 함께 작은 진동이 울리는 기계 앞으로 몸을 이끌고 가서 선다. 

  이 차가운 기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차가운 것은 전부 내 것이고, 따스한 것은 전부 네 것이었으니 나는 그저 여태 스스로와 자문자답하듯 이야기를 해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은 네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것을 반증하기라도 하듯, 제가 좇아온 것이 전부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것을 반증하기라도 하듯. 내가 사랑한 것은 이 기계가 아니라 너였으니까. 입술을 씹어대길 수 차례. 아, 이것도 네가 좋아하지 않는 내 습관이었는데. 생각이 그곳까지 닿자 마음이 선다. 곧바로 버튼을 눌러 웅웅거림을 멎게 하고는 얇은 피복으로 싸여진 코드를 뽑아낸다. 이 검은 코드를 뽑아낸다고 하여 내게서 널 뽑아내진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한 것일까? 거대하면서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제는 고철이 되어버린 것 옆으로 몸을 기대고 앉아본다. 아무런 소리도, 움직임도,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이제야 나에게 마침표를 알려주는 것만 같다. 

  네가 내게 알려준, 첫 크리스마스에도 마침표를 찍어본다. 그리고 우리의 다음 크리스마스를 위해 다음 문장을 써 내릴 준비를 해보려고 한다. 네가 꾼 꿈대로 우주 어딘가에는 너와 내가 함께 우주를 유영하며 행복한 곳도 있을 테니까. 그때를 위해서 크리스마스에는 네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여주지 않은 것이겠지. 그때엔 우리의 두 번째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자. 

W. 짱_@Zzang_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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