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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할아버지 제 소원은요
필댄

 

“댄.”

“…….”

“댄.”

“……”

 

옆자리기는 하지만, 그렇게 딱 붙어 있는 자리도 아니고 파티션도 아주 대놓고 분리되어 있는데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정말 댄 포레스터 인생에 단 한 사람일 테다. 그리고 그 인간은 정말 뻔뻔하기 짝이 없다.

 

“댄.”

 

제 딴에는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고 하는 거겠지만 댄 입장에서는 봉변이다. 심지어 다른 선생님들 조차 흠, 흠 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댄에게 눈치를 준다.

 

댄 입장에서는 이미 벌써 시달리고 시달렸는데도 또 필 웨넥을 받아줘야 한다는 말이다. 시달렸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고 진짜 댄은 아직도 허리가 아팠고 필은 그래서 슬쩍 자기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댄.”

 

그 눈치란 게 정말 오전 근무가 끝나가니 똑같이 소멸된 게 문제라면 문제다. 진짜 점심 먹기 전까지도 시달려야 한다니. 앞이 깜깜했다. 댄은 속으로 턱끝까지 올라 온 한숨을 가득 쉬고는 필에게 슬쩍 낮게 말했다.

 

“왜요.”

 

그러자 득달같이 필이 댄에게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는 귓가에 낯 뜨거운 소리를 지껄이고는 반질거리는 파란 눈을 빛내면서 제 향수 냄새를 풍기는데 댄은 정말 기력이 다 빨리는 느낌이었다.

 

“산타 할아버지, 저 올해 착한 아이였거든요. 한번도 안 울고, 솔직히 나쁜짓은 여러번 했지만,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 좀 기대해도 되나요?”

“……뭐요?”

“아니 뭐, 산타 할아버지가 소원 들어줄까 싶어서 물어보는 거지.”

 

진짜 이 자식은 지치지도 않나.

 

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슬쩍 필을 보았다. 그 멀끔하기 짝이 없는 얼굴에는 은근한 미소가 가득 담겨 있었고 기대에 찬 눈빛 때문인지 푸른 빛은 더욱 새파랗게 빛났다. 평소에도 잘 생긴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 자식은 제가 원하는 별 이상한 변태 같은 짓거리가 있을때는 배로 얼굴에서 빛을 뿜어낸다.

 

그리고 오늘따라 곱슬머리를 적당하게 헝클어뜨린 짙은색 머리와 저 새파란 눈동자 그리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자신을 향한 욕정을 모른척할 수는 없는 것이다.

 

댄 포레스터는 정말, 분명히 알고 있었다. 눈앞의 이 예쁜 필 웨넥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소원이 뭔데요. 들어나 봅시다.”

 

댄이 정말 들어줄 생각도 없다는 듯이 살짝 꺼림칙하다는 표정을 하면서 말했지만, 필은 그런 것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더 댄에게 달라 붙었다. 불투명한 파티션 하나를 둘 사이에 두고 댄이 필을 다시 한번 바라 보았다.

 

파티션에 가려진 얼굴 때문인지 그의 눈만 보여서 그 파란 눈에 더욱 시선을 빼앗길 것 같았다.

 

“나 댄이 먼저 사랑한다고 하는 거 듣고 싶어.”

“……헛소리 좀 그만하세요.”

“너무하네. 그럼 댄 소원은 뭔데?”

 

그런데, 이 망할 자존심이 이 남자에게 분명하게 끌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싫은 것 같았다.

 

그 시선에 당장이라도 마음을 빼앗긴 걸 모두 들켜버리고 평생 버리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기 싫다는 마음 하나로 일부러 속 좁은 말을 하고야 만다.

 

“글쎄요. 제 소원은 필 선생님이 제발 안 이랬으면 좋겠네요. 정말, 아침부터 다른 사람들 다 쳐다보게 뭐하는 겁니까. 필 선생님. 얼른 하던 일 하시죠.”

 

내 크리스마스 소원이 우리가 서로 아무 사이도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말도 안 되고 바라지도 않는 말을 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당신이 입술을 삐쭉이면서 어깨를 으쓱거리기만 할 뿐 다시 날 욕정하는 눈으로 볼 게 분명하니까.

 

“아니. 일부러 보라고 그 옷 입은 거 아닌가? 진짜 너무하네. 아니 사랑한다고 하기가 그렇게 힘드나. 그럼 반이라도 해 주던지.”

 

지금처럼 필이 그렇게 자신을 가슴을 흘끔거리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나면 또 그제야 안심하면서 싫다는 표정을 억지로 지어 보이면 된다. 그게 좋았다. 자신의 마음을 다 보여주는 건 위험하니까. 나는, 매달리고 싶지 않으니까.

 

그게 우리 사이에는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내게는.

 

* * *

 

 

필 웨넥

[안녕하세요.]

[필 친구 스튜입니다. 혹시 필 남자친구 맞으신가요?]

 

댄 포레스터

[헛소리 그만하시죠. 필 쌤. 잠이나 주무세요.]

 

필 웨넥

[안녕하세요. 혹시 필 남자친구 맞나요?]

[필 이자식이 교통사고가 나서 지금 병원이거든요.]

 

댄 포레스터

[재미없어요.]

 

필 웨넥

[진짜예요. 병원에서 일단 저한테 연락해서 제가 왔는데 남자친구분이 없길래 연락해요.]

[지금 필이…… 좀 상태가 안 좋은데 혹시 와줄 수 있나요?]

 

댄 포레스터

[당신 진짜.]

[전화 받아.]

 

 

 

거기까지 문자를 쓰다가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무리 필이라도 이 정도로 장난을 치는 건 좀 아니니까, 전화를 해서 다시는 이런 장난하지 말라고 진심으로 화라도 내야겠다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는데 알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전화를 대신 받았다.

 

-여보세요?

“……필?”

-안녕하세요. 저는 필 친구 스튜고요. 지금 필은 병원인데, 일단 아직 안 깬 거 같아요. 병원에서는 상태 지켜보자고 하는데…….

“이거 무슨 장난,”

-장난 아니에요. 진짜 저도 이 자식이 이상한 짓 많이 하는 건 아는데 진짜예요. 제가 알기론 남자친구 있는 걸로 알아서 와봤더니 없고 병원에서도 저한테 연락했길래 제가 연락한 거예요.

“……어딥니까.”

-주소는 문자로 보낼게요. 남자친구분 맞죠?

“……일단 갈게요.”

 

남자친구 맞죠? 라는 질문에 댄은 솔직히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네 맞아요. 라고 대답해서 필이 어쨌든 나중에 깨어나면 날 이상한 집착 스토커로 볼 수도 있지.

 

그럼 솔직히 말해? 애인 사이는 아니고 그냥 떡치는 사이긴 한데, 모르겠네요. 이렇게 말했다가는 또 나중에 뭐라고 해? 결국 댄 포레스터는 그냥 가만히 있다가 곧 간다는 말만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가는 와중에도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거 만약 또 이상한 변태같은 플레이하려고 하려고 시동 거는 거면 뭘 어째야 하지?

 

* * *

 

다행히 예상했던 변태 같은 플레이를 위한 밑밥 작업은 아니었다.

 

다만, 예상하지 못했던 건.

 

-뭐? 남자친구?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아니, 진짜라니까? 네 남자친구가 지금 병원으로 오고 있다니까. 아까 너 자고 있을 때 내가 너 상태 안 좋은 거 같다고 병원으로 오라고 연락했어.

-스튜. 너 요즘 일 힘들어? 그래서 이래? 정신 차려라 좀.

-미치겠네. 필. 진짜라고 더그한테 전화라도 해줘? 너 남자친구 있다고. 내가 누군지는 아직 모르는데…….

 

필 웨넥이 있다는 병실 문앞에서 필 웨넥의 목소리로 내가 남자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확인사살 받는 일이었다.

 

물론, 사실 그건 어느정도 예상했기에 견딜 수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 둘 사이가 일반적인 독점 연애 관계는 아니었지. 굳이, 비유를 하자면 독점 연애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자유연애주의자고 자유연애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독점연애주의자다.

 

우리 둘 사이에서 전자는 필이였고 후자는 나였다. 필은 독점 관계를 원하는 듯 했지만, 그의 본성 상 불가능할 게 분명했고 나는 이렇게 자유 연애자 행세를 하고 있지만 그를 독점하고 싶어하니 우리 관계는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또 예상하지 못했던 건.

 

-이름이 댄, 대니얼……. 뭐 그런 이름이었어. 동료 선생이었댔는데.

-뭐? 댄 포레스터?

-아. 맞아. 댄 포레스터였어.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나 지금 그 사람 본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뭐?

 

하루밖에 안 됐다는 말 이후로 나온 필의 놀랍다는 듯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 이어진 말은 한 가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아니 뭐, 가슴 큰 건 인정인데……. 그래도 남자잖아? 나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한테는 안 설 거 같은데.

 

역시, 필 웨넥은 기본적으로 남성과 독점 연애를 할 수 없는 인간이었고 지금까지의 모든 건 그냥 질리기 전에 보여주는 반짝 서비스였다는 것.

 

-야. 잠깐 너 지금 오늘 며칠인지 알아?

-뭔 소리야……. 오늘 3월 며칠이더라…….

 

그리고 필 웨넥은 자신과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을 잊어버렸다는 것.

 

댄 포레스터는 이상주의자였고 정말 염원하던 것도 많고 하고 싶었던 것도 많은 꿈이 많은 인간이었지만, 단 하나 확실한 건 있었다.

 

 

 

댄 포레스터

[오늘 일이 있어서 못 갈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낭떠러지에 떨어질 때는 적어도 뭘 붙잡아야 살 수 있는 돌인지, 뭘 붙잡으면 더 끝없이 추락하는 줄인지 파악하는 현실주의자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발걸음을 차마 옮기지 못하다가 문틈 사이에서 들려온 어색할 텐데 안 봐서 다행이라는 필의 낮은 목소리에 뒤를 돌았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크리스마스 소원을 이런 식으로 들어주신 건 아니었겠죠?

이런 의도는 아니었어요.

 

* * *

 

 

댄 포레스터

[제발 그만 좀 하세요.]

 

필 웨넥

[뭘 그만해?]

[뭘 그만하라고 하는지는 말해야 내가 뭘 그만할지 알 거 아니야.]

 

댄 포레스터

[몰라서 물어요. 당신? 지금, 지금 이게 말이 됩니까.]

 

필 웨넥

[말이 안 될 건 뭐야.]

[난 내가 영어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 알았다.]

[다른 나라 말이라도 지금부터 연습해올까?]

[댄 쌤.]

[이탈리아 남자 어때.]

[내가 또 그쪽 얼굴이긴 한데.]

 

댄 포레스터

[그만해요. 다른 선생님들도 봅니다.]

 

필 웨넥

[일이나 할 것이지 뭔 다른 사람 핸드폰하는 걸 봐?]

[누구야?]

[웃기는 놈이네.]

[그래서 어때? 내가 지금부터 공부할까.]

 

댄 포레스터

[제가 졌습니다.]

[그래서 언제요?]

 

필 웨넥

[오늘 퇴근하고 맥주? 아니면]

[이번 주 주말에 같이 저녁 먹자 근사한 데서.]

 

댄 포레스터

[주말은 안 됩니다.]

[오늘 마치고 맥주 마시죠.]

 

필 웨넥

[그럼 다음 주 주말은?]

 

댄 포레스터

[다음 주 주말도 약속 있어요.]

 

필 웨넥

[그럼,]

 

댄 포레스터

[오늘 맥주 마시죠.]

[이제 일해요.]

 

 

 

내가 진짜 이랬다고?

 

필 웨넥은 진짜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내가 진짜 이랬다고? 말도 안 돼. 정말 형편 없는 단어 선택인 건 알지만, 그냥 그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진짜 기가 막혔다.

 

문자를 쭉 봐도 제가 자신의 남자친구라는 댄 포레스터와 나눈 대화라고는 일방적인 구애 말고는 없었다. 아니, 물론 자신이 솔직히 어디서 빠지는 건 아니기에 구애를 이만큼 해 본적도 없거니와 이만큼 구애를 해서 안 넘어 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정말 아무리 가슴이 크다고 해도 내가 남자한테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질리게 굴었단 말이야? 진짜 믿기지가 않았다.

 

기억이 날아간 만큼 길게 휴가를 내고 병원에 눌러 붙은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고 심심해 핸드폰이나 만지작 거리다가 우연하게 들어간 댄 포레스터와의 문자에 필은 충격을 받았다.

 

 

 

댄 포레스터

[주말에는 보통 일 있어서 안 됩니다.]

 

필 웨넥

[아님, 뭐 퇴근하고라도 어때? 맛있는데 찾아놨는데.]

 

댄 포레스터

[글쎄요. 그냥 펍가서 맥주나 마시죠.]

 

필 웨넥

[…….]

[또 저번에 갔던 그 펍 말하는 건 아니겠지.]

 

댄 포레스터

[거기서 어때서요.]

 

필 웨넥

[일단 그럼 오늘은 거기 가자.]

[근데 다음에는,]

 

댄 포레스터

[이따 봐요.]

 

 

 

답장을 올려다 보면 볼수록 가관이었다.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꽤 올려봤지만 내용은 하나 같이 다 똑같았다. 자신은 댄에게 주말에 만나거나 그게 안 되면 퇴근하고 저녁 식사를 하고 싶어하지만, 댄은 거절한다.

 

그리고 그냥 누가봐도 절대 데이트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펍에서 맥주를 마시자고 하고는 쏙 빠져버린다.

 

 

 

댄 포레스터

[싫으면 다음에 가죠.]

 

 

 

이런 말을 하면서.

 

그럼 자신은 다음에는 다른 데 가자고 하며 일단 물러나지만, 결국 일단 지금까지 봤을 때 자신과 댄이 간 곳이라고는 그 펍밖에는 없다.

 

진짜 이해가 안 된다. 애초에 자신이 남자한테 이렇게 들이 댔다는 것도 안 믿기는데 그 과학 선생이 뭐가 그렇게 예쁘다고 이렇게 굴어? 진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아무리 봐도 나한테 관심 없잖아. 남자친구라고 스튜도, 더그도 심지어 앨런까지 알고 있다는 게 웃음이 나왔다.

 

-난 사귀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크리스마스 같이 보낸다고 호텔도 예약했잖아.

 

스튜의 말에 더 어이가 없어졌다. 아니 사귀긴 뭘 사겨. 아무리 봐도 내가 까여서 지금 어장당하고 있는 게 뻔하구만. 아니, 어장 수준이 아니지 백프로 그냥 먹버당하고 있는 거 아냐?

 

필은 대체 왜 친구들이 댄과 자신을 사귀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장 근거 있는 생각은 자신이 먹버당하고 있는 게 부끄러워서 애인 사이라고 말했다는 건데, 그게 말이 되나? 필 웨넥이?

 

아니면, 정말 남자친구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사귀고 있는 사이던가.

 

여튼 둘 중 하나일 텐데 둘 모두 말이 안 된다. 전자는 자신의 인생을 통들어 봤을 때 그건 필 웨넥이 할 행동이 아니었고 후자는 이 문자만 봐도 댄 포레스터는 저한테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나도 진짜 끈질긴 놈이네. 아니 이렇게 싫다는데 계속 들이대네.’

 

새삼스럽게 참 할 말을 잃어가면서 핸드폰을 빤히 보고 있으니 갑자기 문자창에 입력 표시가 뜨기 시작했다. 댄 포레스터가 뭔가를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댄 포레스터

[---]

 

 

 

어쩌면 저번에 병문안을 못 온 거 때문에 그런가? 하긴, 그럴 만하지. 오려나? 그래도 교통사고 나서 다쳤다는데 와줄 순 있지 않나.

 

평소라면 이런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도 잊고 필은 댄이 보낼 문자를 기다렸다. 그러나 메시지 입력창은 입력 중으로 떴다가 곧 사라졌다.

 

‘뭐야?’

 

그리고 잠시 기다리면 다시 댄이 입력 중이라는 알림이 떴다. 그 알림이 한 3번 반복 되었다가 결국에는 한 시간 넘게 기다린 보람도 없게 아무 문자도 오지 않았을 때 필 웨넥은 참을 수가 없었다.

 

당장 전화를 할까 하다가 곧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여기서 나 전화하면 싫다는 사람 한테 미친 듯이 달라 붙은 것도 모자라서 댄이 문자 보내는지 안 보내는지도 계속 감시하고 있다는 걸로 보이지 않나?’

 

그리고 그 생각은 맞았다. 분명, 댄 포레스터는 자신이 왜 문자를 썼다 지웠다만 반복하느냐, 라는 말을 꺼내기만 해도 경멸 여린 눈초리를 하면서 그걸 왜 보고 있냐고 추궁하듯이 물을 것이다.

 

필은 곧 그 생각에 핸드폰을 내려놓았고 그냥 가만히 댄과 주고 받은 문자를 더 보기만 했다. 뭔데 이렇게 문자 하나를 못 보내나 싶어서.

 

* * *

 

그 호기심이 문제였을까.

그리고 점점 이상한 문자를 발견하게 되고 말았다.

 

 

 

댄 포레스터

[오늘은 힘든데요.]

 

필 웨넥

[야근해? 어쩔 수 없겠네.]

 

댄 포레스터

[내일은 됩니다.]

 

필 웨넥

[내일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

 

댄 포레스터

[……싫음 말고요.]

 

필 웨넥

[아니, 싫다는 말이 아니잖아.]

[난 좋지.]

 

 

 

분명 그렇게 싫다고 근사한 데이트나 주말에 만나서 맛있는 걸 먹기는 싫다고 난리를 피우더니 절대 만나자는 말에 싫다고는 안 했다.

 

그게 이상했다.

싫으면 안 만나면 되잖아. 근데 왜 계속 만나주는 거지?

 

그 생각이 한번 들고나니 필은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대체 댄 포레스터의 마음은 뭐지?

 

 

 

댄 포레스터

[오늘 고마워요.]

[다음에 제가 맥주 살게요.]

 

 

 

왜 자꾸 이런 문자를 하는 거지?

그것도 내가 다음에 또 만나서 맥주도 마시고 안주로는 당신도 먹고 싶다 이런 말을 하는데?

 

 

 

필 웨넥

[나 진심인데.]

 

댄 포레스터

[잠이나 자요.]

[맥주 제가 더 잘 마시거든요.]

 

 

필 웨넥

[쎈 걸로 먹여야겠다.]

[너 취하면]

[엄청 야하게 구는 거 알아?]

 

댄 포레스터

[제가 언제요.]

[잠이나 자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필 웨넥

[막]

[키스해 달라고 조른다고]

[너]

 

댄 포레스터

[진짜!]

[당신, 좀!]

 

 

 

이걸 왜, 다 받아주고 있는 거야?

 

너 뭐야, 댄 포레스터.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 * *

 

문자 입력창을 빤히 보면서 단 한 글자도 입력하지 못하다가 한 글자를 썼다가 곧 지웠다가 다시 썼다가 지웠다.

 

 

 

댄 포레스터

[당신,]

 

 

 

그리고 그 순간에 깨닫는다. 당신 뭐?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래? 댄은 스스로도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대체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문자를 보내지도 않으면서 썼다 지웠다 하는 이유도.

대체 그 문자에 무슨 내용을 쓰고 싶은지 모르는 마음도.

마지막으로 3주째 반복하는 이 답답함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자신은 진짜 망했다는 사실이었다. 정말, 이렇게 되길 바란 것은 아니었다. 필 웨넥이 독점 연애주의자인 척하는 자유 연애주의자라는 건 알고 있었고 그에 맞춰서 행동했다.

 

더 깊이 빠져들지 않도록 혹여나 맛보여주는 독점 연애 마음을 더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에 감사해야 하는데, 마음이 일렁거리기만 했다.

 

이상했다. 오히려 잘 됐다고 말해야 하는데.

이 개자식,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해야 하는데 입이 안 떨어졌다. 그냥 아쉬웠다.

 

다시 전처럼 맛이라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그런 나쁜 생각을 하게 되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그 순간에 필 웨넥의 전화가 왔을 때 덥썩 받아버리고 말았다.

 

-댄?

“……여보세요?”

-댄 포레스터 맞죠? 이 전화.

“……네.”

-댄 쌤. 나 다쳤는데 병문안도 안 와보는 거예요?

 

그 말에 제가 굳이 왜 가냐 라고 말해야 맞는데 댄은 가만히 있었다. 그냥 어쩔 줄을 몰라서 침묵을 택했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혹은 절망스럽게도 필이 댄에게 선택지를 줬다.

 

-지금 병문안 와주면 안 돼요? 아직 학교 사람들 아무도 안 왔는데 다들 너무하네.

 

댄은 그 말에 알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대체 왜 알겠다고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얼떨떨한 기분으로 주먹을 쥐었다. 갑자기 손바닥에서 땀이 나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 탓이라고 생각해 봐도 이상하게 손이 축축했다.

 

* * *

 

3주 동안 댄 포레스터의 문자 창은 변하지 않았다. 입력창이 보였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리고 댄 포레스터와 주고 받은 문자 또한 같았다.

 

댄 포레스터의 마음은 짐작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필은 그냥 무작정 댄에게 병문안을 오라고 했고 그를 불렀다. 이 복잡하고 이상한 감각과 대체 댄 포레스터가 하는 이 이상한 행동의 원인을 파악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도착한 댄 포레스터의 얼굴을 봤을 때, 필 웨넥은 단번에 이해했다.

 

댄 포레스터는 날 사랑하고 있구나.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는 겁쟁이구나.

 

부드러운 곱슬머리와 살짝 처진 눈매, 그리고 자신을 가득 담고 있는 그 초록 눈에는 열망이 가득했다. 필 웨넥은 모를 수가 없었다. 댄 포레스터가 자신을 보는 시선을 결코 오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댄 포레스터가 병실에 들어왔을때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그가 말하길 기다렸다.

 

자신이 먼저 그에게 물을 수도 있겠지. 너 날 사랑해? 그리고 사랑하다고 입밖으로 당장 내 뱉으라며 종용할 수도 있겠지. 근데 필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눈을 하는 저 입에서 그 말이 먼저 나오길 기다렸다.

 

“이번 크리스마스 소원으로 당신이 헛짓거리 그만하는 게 소원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 말을 하는 눈이 물기를 머금은 순간 필은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그랬구나.

지금까지 나도 계속 날 사랑한다는 그 말이 나오길 기다렸겠구나.

 

“근데 이렇게, 이렇게 되길 바란 건 아니에요.”

 

눈물을 기어코 매달았을 때 필 입에서 문득 한 마디가 나왔다.

 

“내 소원은 뭐였어?”

“네?”

“크리스마스 소원으로 댄을 내가 헛짓거리 안 하게 빌었다며, 그럼 나는? 나는 뭐라고 했어?”

 

댄은 슬쩍 눈을 피하면서 우물쭈물 거리면서 갑자기 주먹을 꽉 쥐고는 당장이라도 이 자리에서 나가버리고 싶어하는 듯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필은 댄이 그렇게 자리를 뜨게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은 아니었다.

필 웨넥은 댄 포레스터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지금 당장 듣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소원 뭐라고 빌었어? 왜냐면, 난 지금 그게 정확하게 뭔지 알 거 같거든.”

“뭐? 당신,”

“참고로 아직 기억은 안 나. 근데 알 거 같아.”

 

왜냐면 내가 지금 그걸 바라거든.

 

한 발짜국 댄에게 다가가 그 얼굴을 보고 슬쩍 턱에 손을 올리자 댄이 살짝 피하는 듯하더니 곧 몸에 긴장을 풀었다. 아, 이거구나. 키스해 달라고 조르는 눈.

 

“……내가, 좋아한다고 하면. 그럼,”

 

그럼 키스를 해 줘야지. 이 얼굴을 하는데 어떻게 안 해줘. 부드러운 입술을 슬쩍 머금고 치열을 살짝 훑으면 곧 댄은 끄응 거리는 소리를 낸다. 남자 놈이 그런 소리를 내는 게 귀여울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산타 할아버지가 소원 반만 들어주네?”

“……필?”

“그래도 이 정도면 크리스마스 소원 이루어진 걸로 봐도 될 거 같은데.”

 

그리고 내가 원래 키스해주던 방식대로 키스하기 시작하면 더 사랑스러워질 수 있을 줄도 몰랐고.

 

“사랑해.”

“……댄?”

“개자식, 널 사랑해.”

 

사랑한다는 말을 분하다는 듯이 말하는 게 얼마나 꼴리는지는 더더욱 상상도 못 해봤지.

 

“나도 사랑해 댄 포레스터.”

“넌, 개자식이고 난 진짜,”

“……울지 마. 내 눈을 보면 모르겠어? 난 남자한테 절대 안 세우는데 널 이렇게 빨아 먹고 싶다는 것처럼 보고 있잖아.”

“……개자식,”

 

그리고 눈물이 이렇게 달콤할 줄도 널 만나기 전에는 몰랐을 거야.

 

 

 

 

W. 타샹_@n836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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