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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퀼

 

 

  크리스마스가 지난 지 한참인데, 광장 구석에는 여전히 번쩍이는 장신구가 가득했다. 그루트가 만든 트리 아래 포장을 뜯지 않은 선물들이 층층히 쌓여있었고, 집집마다 웃음이 터져 나왔으며, 부드러운 스프 냄새가 허기를 돋궜다. 지금의 노웨어는 마치 동화 속 풍경처럼 아늑하고 풍요롭다. 

 

  로켓도 계단참에 앉아 도마뱀 꼬치를 우물거리며 여유를 만끽하던 중이었다. 

 

  "개 같은 거, 불쌍해서 한 번 옮겨줬더니 이젠 당연하게 오라 가라 하네. 아예 방에 묶어둘까." 

  낯익은 상소리에 귀를 세웠다. 네뷸라가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걷는 방향을 보니 목적지는 어김 없이 술집이었다. 그러니 누구한테 저렇게 화가 난 건지는 불 보듯 뻔했다. 순식간에 뒷머리가 차가워졌다. 퀼이 또 쓰러졌군. 로켓은 입안으로 혀를 굴리며 투덜거린다. 하여튼 손 많이 가는 놈이다. 

  "내가 갈게." 

  로켓은 손가락을 튕겨 아무렇게나 꼬치를 버린 뒤, 엉거주춤 멈춰선 네뷸라에게 다가갔다. "버키 팔 선물 받은 답례야." 이만 가보라는 의미를 담아 주먹 쥔 손으로 네뷸라의 종아리를 툭 치고는 그대로 지나쳤다. 

  술집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등판이 테이블 위에 고꾸라져 있는 게 보였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올이 나간 바지, 대충 뒷축을 꺾어 신은 신발. 그 덩치로 사방에다 풍겨대는 분위기가 영 까끌했다. 괜히 짜증이 난다. 

  가까이 가 보니 복장이 터지려고 했다. 이미 퀼은 테이블에 이마를 박은 채 술병을 안고 주정 부리는 취객이 되어 있었다. 대체 얼마나 마신 건가. 테이블에는 빈 술병이 가득하다. 어쭈, 테란은 간이 네 개쯤 되나 봐? 

 

  "좀 작게 말해... 머리 울려." 

  눈썹을 찡그리는 퀼을 똑바로 쳐다보며 로켓이 코웃음 쳤다. 

  "그러게 누가 이렇게 무식하게 쳐 마셔?" 

  빈 병만 여섯 개다. 괜히 울화가 터진다. 빈 술병 하나를 집어 퀼의 눈앞에 대고 흔들어 댔다. 너 진짜 술 마시다 죽고 싶기라도 한 거냐? 

  로켓의 기억 상, 처음엔 분명 한 병이었다. 

  임무를 끝나고 노웨어에 돌아오면 퀼은 어김없이 술집에 들려 한 병을 비웠다. '요즘 잠이 잘 안 와서 그래. 이게 도움이 된다고.' 그런 말을 할 때 막았어야 했나. 로켓은 그때만 해도 퀼이 이렇게 빌빌거릴 줄은 몰랐다. 안일한 방목을 지나며 퀼의 테이블에 놓였던 술병의 개수는 한 병이었던 것이 어느새 서너 병으로, 이제는 대여섯 병으로 늘어나 있었다. 

  로켓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테란의 신체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렇게 정신을 잃을 만큼 만취하길 반복하면 몸에 큰 이상이 생길 거라는 사실 하나 만큼은 분명했다. 게다가 퀼은 이제 술을 안 마실 때도 온몸에서 술 냄새를 풍겼다. 영락없이 중독자였다. 

  "이 화상아. 너 대체 언제까지 이럴래?" 

  로켓은 다시 까무룩 잠들려는 퀼을 신경질적으로 잡아 흔든다.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던 퀼이 순간 울상이 되어 입을 틀어 막았다. 나 토할 것 같아.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로켓은 한숨을 뱉었다. 

  "물이라도 떠 올까?" 

  그러나 퀼은 이미 참을 수 없던 건지, 로켓이 말이 채 끝 맺기도 전에 술잔에 고개를 처박고 밀려나오는 속을 게워 냈다. 로켓은 끙끙 앓는 퀼에게 다가가 넓적한 등을 느리게 쓸어준다. 퀼은 커다란 물풍선이 천천히 터지는 것처럼, 한참이나 속을 비워냈다. 아무 냄새도 안 나는 투명한 물을 토하면서 퀼은 뭐가 그렇게 힘든지 땀까지 뻘뻘 흘렸다. 로켓은 그게 꼭 퀼의 영혼이 빠져나가는 모습 같다고 느낀다. 

  손바닥에 맞닿는 등이 점점 차갑게 식어가는 상상을 하면, 기분은 배로 흉폭해진다. 

  술집에서부터 질질 끌고 온 퀼을 침대에 눕힌 뒤, 로켓은 한동안 그 앞에 앉아있었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바르작대는 퀼을 쉽게 떠날 수 없었다.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아주며 두서 없이 쏟아냈다. 술 좀 그만 마셔. 정 못 끊겠으면, 마셔도 되니까 이렇게 취할 때까지 마시지만 마. 그러다 병 나겠어. 그건 너도 싫잖아. 그러니까 좀 줄여. 아프지 마. 왜냐면... 로켓은 입을 꾹 다물었다. 네가 걱정이 된다. 퀼, 난 네가 걱정 돼. 

  로켓은 용병 생활을 거치며 수없이 많은 중독자를 봐왔다. 전투 노예들과 용병들은 목숨 값으로 받은 푼돈으로 술을 사 마셨고, 로켓도 그 중 하나였다. 코가 빨개질 때까지 술을 들이키면 기분이 좀 나았다. 사는 게 꽤 괜찮게 느껴졌다. 부조리한 현실을 멋대로 편집해 현재가 즐겁다고 자위했다. 

  하지만 중독자의 말로는 생각보다 구차하다. 술 한 병 구할 수 있으면 사람이길 포기할 수도 있었다. 퀼도 언젠가 그렇게 될까. 그건 싫었다. 퀼이 이렇게 살아선 안 됐다. 

  "로켓, 너 울어?..." 

  언제부터 듣고 있던 건지 퀼이 느리게 손을 뻗어온다. 그러더니 로켓의 뺨을 문질러 닦는다. 털이 축축해. 속삭이듯 중얼거리는 음성에 로켓은 결국 느리게 입을 뗐다. 

  "제발 이런 짓 좀 그만해." 

  "..응." 

  "언제까지 이럴 거야?" 

  "미안...." 

  "나한테 사과하라는 얘기가 아니야. 널 버리지 말란 얘기를 하는 거야." 

  "..." 

  "제기랄. 퀼... 부탁이야. 널 놓지 마." 

  네가 이대로 널 버리면 난 어떡해야 해? 하루가 다르게 소멸하는 널 붙잡고 돌아오길 간청하기? 난 네가 이대로 완전히 놓아버릴까 겁이 나. 로켓은 차마 그것까지는 말하지 못한다. 퀼이 흐느끼는 로켓을 껴안았다. 울지 마. 미안해. 등을 두드리는 손길이 아득해서 진심을 말할 것만 같다. 침묵하기 위해 혀를 깨문다. 

  "울지 마." 

  "..." 

  "네가 울면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퀼은 로켓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며 투덜댄다. 이마가 순식간에 뜨거워진다. 

  로켓은 슬며시 퀼을 밀어냈다. 퀼은 팔에 힘을 줘 버틴다. 내가 미안해. 이제부터 좀 줄일게. 퀼의 중얼거림에 로켓은 마음이 펑 터질 것만 같다. 이런 대화를 나눈 게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퀼은 이미 술에 취하면 기억을 잃는 지경까지 치달았다. 

  내일이면 이 녀석은 버릇처럼 술집에 갈 것이고, 습관처럼 만취해 기절할 것이다. 그럼 네뷸라나 로켓이 퀼을 업고 질질 끌어다 이 침대에 눕혀주겠지. 모두 지겹다. 로켓은 퀼의 목덜미에 머리를 기댔다. 이마 언저리가 축축하게 젖는 게 느껴졌다.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될까, 퀼..." 

  "..." 

  "뭘 하면 될까. 말해줘." 

  그러나 퀼은 입을 떼지 않는다. 이 주둥아리를 진짜. 로켓은 고개를 치켜 들고 퀼을 노려본다. 흐려진 녹색 눈이 원망스럽다. 차라리 한 대 패주기라도 하면 덜 할까 싶지만, 동시에 퀼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자식은 그게 뭐든 간에 아무리 팬다고 해도 본인이 그만두기 전까진 관두지 않을 위인이니까. 

  이마춤에 닿는 숨이 나른하게 이어진다. 죽고 싶은 거야? 로켓은 힘겹게 묻는다. 퀼이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살고 싶은 거야. 살려고 이러는 거야. 죽죽 늘어지는 몸뚱아리를 침대에 눕히며 로켓은 그 옆에 함께 누웠다. 

  그리곤 퀼의 뺨을 부여잡고 느리게 입술을 가져다 댄다. 퀼은 로켓을 밀어내지 않았다. 로켓은 취한 숨결에다 입술을 포갰다. 닿기 직전에 멈추는 입맞춤이 영 아쉬워 괜히 뜨끈한 볼에 입술을 마구 눌렀다. 

  메말라 갈라진 입술이 뜨겁고 부드러운 뺨 위에 닿는다. 잘 자. 힘겹게 몸을 뒤로 물린 로켓이 퀼을 한 번 더 끌어안았다. 

  퀼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로켓을 올려다보다가 천천히 팔을 잡아 당겼다. 

  딱 맞는 퍼즐 조각처럼, 로켓의 입술 위로 퀼의 입술이 닿는다. 제기랄. 로켓은 뻣뻣하게 굳어서 눈을 질끈 감았다. 말캉한 혀가 입술 새를 가르고 들어온다. 술에 절은 혀가 입안을 침범하고, 로켓은 퀼의 뺨을 간절하게 붙잡는다. 이것도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로켓은 매번 퀼을 밀어내지 못했다. 넌 이 기억도 잊어버리겠지? 네가 밉다. 입맞춤은 여느 때처럼 썼다. 뜨거운 혀가 입안을 구를 때마다 로켓은 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심장에 박힌 폭탄은 다행히 감정 때문에 터지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로켓은 애진작과 퀼과 함께 펑 터져버렸을 것이다. 

  먼저 입술을 뗀 퀼이 로켓의 가슴팍에 이마를 기댔다. 로켓은 퀼의 머리통을 뜨겁게 끌어안는다. 퀼의 숨소리가 심장 소리에 맞추어 빨라졌다가, 느려졌다가, 이내 째깍거렸다. 

  심장에 박힌 폭탄이 터져도 죽지 않을 수 있을까. 술에 빠져 살면서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우리도 밤이 아니라 낮에 입을 맞추게 될까. 로켓이 언젠가 퀼과 함께 들었던 노래를 자장가처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W. 허파_@huvo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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