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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Christmas
카일리스

* 약간의 자해 및 유혈 묘사가 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온통 반짝이는 전구들과 웃음으로 가득했던 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하다. 쌓여가는 눈 위로 발자국 하나 없었고, 언제 어디서나 흘러나오던 캐롤도 멈췄다. 홀로 보내는 두 번째 크리스마스지만, 이토록 조용한 크리스마스는 처음이기에. 리스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얼굴이 온통 시리다. 연중무휴라더니 굳게 닫힌 문을 보는 것도 여섯 번째다. 죽은 도시 마냥 온 가게가 문을 닫았다. 원래 이랬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엔 가족들이 함께였고, 입대하고 나서부턴 동료들이 함께였다. 결혼 후에도 그의 곁엔 가족들이 함께였으니 이날의 고요함은 그에겐 너무도 생소했다. 미처 끄지 못한 듯 반짝이는 가게 앞 트리의 전구를 바라보며 리스는 유일하게 찍힌 자신의 발자국을 따라 되돌아 걸었다.

 

  작년엔 크리스마스 따위를 느낄 새가 없었다. 정부에 의해 가족과 팀원을 모두를 잃은 리스는 복수에 미쳐있었으니까. 경주마처럼 복수라는 앞만 보고 향해 달리느라 남아있는 주변을 살필 새도 없었기에 그 끝에 다다랐을 땐 그의 곁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슬픔을 함께 할 동료도, 기쁨을 나눌 가족도, 그를 다독여줄 친구도. 복수를 하여 후련했나?라고 한다면 이제는 마냥 그렇다고 답할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지금 남은 것은 무엇인가? 외로움뿐이다.

 

  복수라는 목표를 달성한 지도 벌써 꽤 시간이 흘렀다. 얇았던 이불이 두꺼워지고, 푸르던 나무들도 가늘어졌다. 그동안에도 리스는 변하질 못했다. 과거에 그대로 갇혀 있다. 분노는 잊을만하면 차올랐고, 해소할 대상은 그의 손에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시끌벅적한 낮이 지나 해가 지고 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어둠과 함께 외로움이 그를 잠식해 왔다. 싼값에 구한 방은 방음도 되지 않아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그나마 그를 위로해주고 있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조용한 거리와 평소보다 더 시끌벅적한 옆집의 웃음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지금 가장 최악인 건 술이 떨어졌다는 것.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 어느 때 보다 누군가와 함께 행복하게 지냈던 이 날이, 그 누구에겐 1년 중 가장 외롭고 조용한 날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지금 그 ‘누구’가 리스 본인이 됐다는 것은 차악이다. 반대인가? 모르겠다. 머리가 복잡하다. 의자에 앉아 눈을 감자 웃음소리가 더 또렷하게 귀에 박혀온다. 리스는 그들의 목소리라도 들으려 했지만, 망할 벽은 대화 소리까진 전해주지 못했다. 결국 이어폰을 찾아 꼈다. 오랜만에 듣는 노래 사이로 로렌의 목소리가, 루시의 웃음소리가 섞여 들었다. 리스는 이어폰 줄을 잡아 뜯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무력하게 옆집의 화목함을 견뎌야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그들의 웃음소리가 몇 개인지 파악했을 즘, 즐거운 합창이 시작됐다. 지겹게도 들었던 캐롤이 울려 퍼진다.

 

 

  ‘Last Christmas I gave you-’

  ‘-to save me from tears,’

  ‘I’ll give it to someone special!!’

 

  “I’ll give it to someone special.....”

 

 

  리스는 익숙한 그 음절을 자기도 모르게 따라 읊조렸다. 그들의 행복한 외침과 상반되는 제 음성에 리스는 실소를 터트렸다. 특별한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곧 다가올 내년을, 남은 아쉬움을 털어낼 올해를 기념하는 파티가. 리스에게는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꿈꾸고 기대하는 어떤 특별한 사람이자 미래는 그에겐 더 이상 없다. 그들의 노래가 절정을 향할 때, 리스는 일어섰다. 단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이젠 서랍 깊숙이 박혀있던 잭나이프를 꺼내 옆집과 가장 가까운 벽에 기대어 섰다. 더욱 선명하게 노래가 울리고, 스피커의 진동이 벽을 타고 리스의 몸까지 전해져 온다. 몸이 저릴 정도로 진동하지만 되려 까맣던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I’ll give it to someone special-’

 

 

  찰각-

  아직도 날이 선 칼 부분을 연다. 그들은 여전히 웃고.

 

 

  ‘Merry Christmas!’

 

 

  행복을 나눈다.

 

  나는 웃음을 나눌 사람도, 행복을 나눌 사람도, 없다.

 

 

  ‘Happy Christmas!!’

 

  “Merry Christmas...”

 

 

  내 마지막 음성이 당신들에게 라도 닿길.

 

  리스는 나이프를 든 손을 목으로 올렸다. 차가운 금속이 닿아오고, 점차 정신이 맑아져 온다. 그래, 애초에 이랬어야 할지도 모른다. 분노도, 외로움도 이젠 지긋지긋하다.

 

  미안해요. 그래도 당신들의 크리스마스를 망치진 않을 거에요. 언젠가- 집세가 밀려 집주인이 찾아왔을 때나, 내 썩어 문드러진 시체에서 고약한 냄새가 풍길 때가 되어서야 당신들은 내 존재를 알게 될 테니까. 걱정 마요. 그때는 특별한 사람들이 당신들 곁에 있겠죠. 그때가 되면 그냥 고독한 존재 하나가 떠났구나. 라고만 생각해 주길 바랍니다.

 

  나이프를 쥔 손에 힘이 들어찬다.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이렇게 끝이 난다. 고약하고, 고독하고, 괴롭게. 꾸욱- 날 선 칼 끝이 짓눌려온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여전히 행복했으니까. 리스는 행여 신음소리 하나라도 그들에게 들릴까 싶어 왼손 등을 물었다.

 

 

  “윽, 읍..”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질긴 살가죽을 뚫고 피가 새어 나온다. 리스는 더 아프게 손등을 물었다. 다시 한번 나이프를 쥔 손을 고쳐 잡고 빠르게-

 

  지이잉-

 

  순식간에 리스의 행동이 멈춘다. 근래 단 한 번도 울리지 않았던 핸드폰이 진동하고 있었다. 누구지. 흔한 광고 전화일 것이 분명했지만 리스는 망설였다. 마치 그를 말리는 듯 뒤집어진 핸드폰은 발신인조차 누구인지 감추고 있었다.

 

  지이잉- 지이잉-

 

  누군지 모를 그 사람은 끈질기게도 진동을 울렸다. 그제야 칼이 꽂힌 목이 아려왔다. 리스는 눈을 찌푸리며 나이프를 든 손을 내렸다. 빠진 칼과 함께 줄줄 흐르는 피를 막아 누르자 진동이 멈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또다시 미친 듯이 진동하는 핸드폰에 리스는 벽에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떤 빌어먹을... 고요해졌다고 생각했던 주변이 다시 시끄러운 노래로 가득 차온다. 그토록 크게 들렸던 진동 소리가 노랫소리에 묻히고, 피가 흐르는 목이 뜨거웠다. 그렇게 소음과 뜨거움 속에서, 오랜만에 저를 부르는 저 소리가 멈출 때까지 리스는 가만히 진동하는 핸드폰을 바라볼 뿐이었다. 미련해져선 안된다. 미련을 가져선 안된다. 어차피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괴롭게... 하지만 그 진동은 멈출 줄을 몰랐다. 몸을 울리는 진동이 등을 타고 전해지는 옆집의 소음인지 핸드폰인지 헷갈릴 정도로.

 

  지이잉-

 

  또다시 끊겼다가 시작되는 진동에 리스는 결국 몸을 일으켰다. 한 손엔 피가 맺힌 나이프를, 한 손은 그 피의 근원지를 틀어막은 채 핸드폰 앞에 선 리스는 짧게 숨을 골랐다. 왜 방해하냐며 욕이라도 해 줄 작정이었다. 나이프를 내려놓고 들어 올린 핸드폰의 액정엔 저장되지 않은 번호가 반짝이고 있었다. 리스는 목을 더 강하게 눌러 지혈하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조심스레 귀에 대 보지만 건너편은 말없이 조용했다. 리스 또한 말없이 조용히 기다렸다. 한동안 울리던 바람 소리 사이로 숨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어, 여보세요?

  “.....”

  -보스?

  “누구십니까.”

  -아 보스, 접니다. 크리스 카일.

  “....중사.”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 ✼ ✼

 

 

 

 

 

  “눈이 장난 아니게 오네요.”

 

 

  카일이 짧은 머리 위로 쌓인 눈을 툭툭 털어내며 웃었다. 양손 가득 들린 맥주를 내려놓으며 현관에 서서 옷도 마저 털어낸 카일은 빨갛게 언 손을 눈썹에 대며 경례했다. 리스는 오랜만에 받는 경례에 미세하게 동요했다. 못 본 척 바닥에 놓인 맥주를 들어 올린다.

 

 

  “됐어. 제대했다며.”

  “그래도 보스는 보스죠.”

 

 

  리스의 눈썹이 살짝 요동치고, 피식 웃음이 샜다.

 

 

  “...잘 모르겠는데.”

 

 

  카일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리스의 질문에도 대답 대신 제 할 말을 쏟아붓기 바빴다.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냐느니, 자기도 파티에 껴달라느니 정신이 없었다. ‘파티는 무슨. 그럴 여유 없어.’ ‘그럼 제가 가야겠네요.’ 결국엔 보기 좋게 말려들어 주소까지 줄줄 읊어버렸지만 막상 맥주와 함께 찾아온 손님은 반가웠다. 이곳으로 이사 온 뒤 한 번도 누군가를 들인 적 없었기에 (그럴 사람도 없었지만). 그래서인지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이 집이 그제야 부끄러웠다. 재킷을 걸 작은 옷걸이조차 없었고, 젖은 신발을 대신할 여분 슬리퍼도 없었다. 머쓱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는 리스를 보고 옷을 걸 곳을 찾던 카일은 재킷을 품에 구겨 안았다. 큼큼- 헛기침하자 미안하다며 살짝 웃은 리스가 카일의 팔을 툭툭 두드렸다.

 

 

  “의자는 두 개니까 걱정 말고 들어와.”

 

 

  카일은 아무 말도 안 했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리스가 먼저 맥주를 든 채 집 안으로 들어서자 카일이 그 뒤를 따랐다. 리스밖에 없을 것이 분명함에도 실례합니다.라고 중얼거린 카일은 빠르게 눈을 굴려 집 안을 훑었다. 낮은 테이블 하나, 의자 둘, 작은 서랍 하나. 급하게 집을 치운 듯 의자 하나에 쌓아 올려진 잡동사니들, 주방 한쪽에 뒹구는 술병들. 오래 사용하지 않은 듯 먼지가 앉은 접시에 코드도 꽂혀 있지 않은 냉장고까지. 카일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잡동사니들이 얹힌 의자 등받이에 재킷을 걸쳤다. 전부 제 탓 같았다.

 

  리스가 그 또한 모를 리가 없었다. 눈 돌아가는 소리 옆집까지 들리겠어-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럴 처지가 아닌 집 상태를 알기에 리스는 말을 삼켰다. 밖의 찬 기온 때문인지 맥주병들은 곧 깨질 것처럼 서리가 서려 있었다. 조심히 주방 테이블에 올려둔 리스는 그중 두 병을 꺼내 들고 카일의 앞에 앉았다.

 

 

  “멀쩡한 의자 두고 왜 바닥에 앉아있어?”

  “냉장고는 폼입니까?”

  “그런 용도는 아니라서.”

  “의자도 그런 용도가 아닌 것 같아서 말입니다.”

  “...말이나 못 하면.”

  “그러니 이렇게 살아서 보스 앞에 앉아있겠죠.”

 

 

  카일이 능글맞게 웃으며 맥주병을 받아 들었다. 갈증이 심했던 듯 단숨에 맥주의 반을 비운 리스가 의자 위의 잡동사니들을 대충 쓸어 담아 서랍에 욱여넣었다.

 

 

  “이제 용도가 맞나?”

  “감사합니다.”

 

 

  폴라티로 감싸진 목이 갑갑했다. 제대로 된 의료 용품조차 없어 대충 휴지와 테이프로 막아놓은 상처에서 흘러나올 피도 신경 쓰였다. 나이프는 피도 제대로 닦지 못하고 서랍 구석에 처박혔다. 바닥에, 서랍 위에, 핸드폰에 피가 잔뜩 묻어 있던 탓에. 리스는 괜스레 카일 옆의 작은 서랍을 살짝 쳐다보곤 바로 시선을 돌렸다.

 

 

  “옆집은 신나 보이네요.”

  “벌써 다섯 곡 째야.”

  “그 정도면 같이 파티 즐기셨네요.”

 

 

  함께 할 뻔 하긴 했지. 누구 덕에 실패했지만.

 

 

  “술 없는 파티는 재미없더라고.”

  “지금은 어떠십니까?”

  “.....”

 

 

  리스가 남은 맥주를 들이켰다. 덩달아 맥주를 마신 카일이 예? 하고 대답을 재촉한다.

 

 

  “그래서 왜 온 거야.”

  “말했잖습니까. 혼자인 크리스마스는 외로워서라고요.”

  “그건 알겠으니까. 왜 왔,”

  “보스도 외롭지 않았습니까? 가게도 다 닫고, 길거리엔 개미 새끼 한 마리 없고, 옆집에선 저렇게 신나게 노래를 불러대니.”

  “크리스.”

  “그거 아십니까? 유럽에선 크리스마스에 자살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답니다.”

  “중사.”

  “조금만 도시를 벗어나도 크리스마스 전전날부터 가게를 닫는 곳도 많으니까요. 외부와 단절되고, 나 빼고 다들 즐겁고 행복해 보이고.”

  “중사.”

  “그래서 그런 거죠?”

  “-뭐,”

 

 

  카일의 손이 빠르게 리스의 목을 덮고 있던 폴라티를 잡아 내렸다. 너덜너덜하게 붙어있던 휴지는 이미 새빨갛게 물들어있었다. 두 눈으로 피를 마주한 카일의 미간이 좁아 든다. 뒤늦게 카일의 손을 쳐낸 리스가 티를 여미고 목을 부여잡았다.

 

 

  “보스 이런 옷 잘 안 입는 거 제가 다 아는데, 숨기려면 잘 좀 숨기시지.”

  “상관 마.”

  “...이런 분 아니었잖습니까.”

  하! 리스가 코웃음 쳤다.

  “이런 게 뭔데.”

  “....보스.”

  “그놈의 보스 소리. 그렇게 충실 해서 FBI 놈들이랑 함께했나?”

  “아닌 거 알잖습니까.”
  “....하.”

  확 치밀었던 화에 리스가 꾹 눈을 감았다.

 

 

  “...그래. 사과하지.”

 

 

  카일은 리스가 알파팀을 꾸리기 전에 있던 팀의 저격수였다. 그 덕인지 정부의 실험에 당하진 않았지만, 그 후 리스의 행보에 가장 먼저 잡혀 들어갔다. 당연하게도 리스와의 팀이 해체된 이후로 그의 행적을 알 리가 없었기에, 짧은 조사 끝에 카일은 특수팀에 들어올 것을 제의받았다. 대 테러범 제임스 리스의 사살 임무를 목적으로 짜인 팀에. 카일은 믿을 수 없었고, 믿지 않았고, 믿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함께했고, 진실을 알고 무단으로 팀을 나왔다. 그와 동시 카일 또한 위험인물에 올랐고 한동안은 좌천되듯 보내진 타국의 임무에선 24시간 감시가 붙었다. 다시 돌아왔을 땐, 테러범이었던 리스는 불쌍한 살인자가 되어있었다. 카일은 분개했고,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분노가 향하던 인물들은 이미 리스의 손에 사라지고 없었다. 그 즉시 카일은 군대를 나왔다. 사실상 불명예제대나 다름없었다. 그 후엔 리스의 행적만을 쫓았다. 제 임무를 마치고 몸을 숨긴 리스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 게 더 명확했다. 외로운 싸움이었을 테다. 카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이 갑갑했지만 나아지는 건 없었다. 리스를 아는 사람은 없고, 도움도 주지 못한 무력한 자신에 짜증이 났다.

 

  4개월 하고도 반. 리스를 찾아다닌 시간이다. 처음 두 달은 그저 과거 존경했던 제 상관에 대한 죄송함과 필요할 때 미처 해주지 못했던 도움과 위로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겨우 그 때문이라 하기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본인은 리스를 찾는 데에 미쳐있었다. 좀- 심하게. 그래서 카일은 리스를 찾는 것을 그만뒀다. 제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찾아서 뭘 하고 싶은 건지. 이 끓어오르는 감정이 그저 미안함과 존경심인지. 풀어내지 못한 분노인지. 카일은 단순했지만, 단순하기 때문에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 고민을 끝내는 데에만 일주일이 넘게 걸렸으니까. 연민이나 동정 따위의 단어로는 정의되지 않는 무거운 무언가였다.

 

 

  “보스. 아니, 제임스. 다시 만나면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습니다.”

 

 

  어릴 적 가졌던 첫사랑에게도 이만큼의 감정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여러번 사랑에 실패하고, 미련하게 살다가 군대에 온 후론 그런 감정을 생각할 틈도 없었다. 이젠 어색하고 어려운 감정이 되어버렸기에. 카일은 희미하게 떠오르는 이 단어가 제가 느끼는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가 맞는 것인지도 한참 고민해야 했다. 그 어지러운 고민을 끝내고 나니 다른 문제가 떠올랐다. 그래서 어쩔 건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사랑을 말할 거야? 하! 말도 안 되는 소리.

 

  어쨌든 카일은 ‘단순’했기에 다시 리스를 찾는 데에 몰두했다. 고민의 답이 어떻게 끝나던 리스를 만나지 못한다면 모두 소용없는 짓이니까. 그저 리스를 찾는 시간 외로 잠을 자거나 밥을 먹을 땐 그 감정에 대해 고민했다.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그 옛날부터였는지. 불쌍한 사람으로 낙인찍힌 그 사람의 사진을 본 후부터인지. 사실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명확하게 결론 지어진 건 하나밖에 없었다.

 

 

  “근데 무슨 말을 해도 헛소리로 들리겠죠.”

  “그건 들어보고 판단하지.”

  카일이 크게 웃었다.

  “좋아합니다.”

  “장난하지 말고.”

  “거봐요.”

  맥주를 새로 가져와 내밀던 리스가 멈칫 카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그래서 그 말은 안 하려고요.”

  ‘이미 했잖아?’라는 표정이다. 카일이 이번엔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아직 차가운 맥주를 홀짝인다.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거란 것도 압니다.”

  “.....”

  “제대하고 나서 계속 보스만 찾아다녔습니다. 아주 잘도 숨어 계셨더라고요?”

  “....딱히.”

  “원래도 그런거... 말할 생각은 없었어요. 근데 그거 보니까 더.”

  카일이 턱짓과 함께 리스의 목 부근에 시선을 맞췄다. 리스의 손이 저절로 다시 목을 가린다. 다시 아파오는 기분. 상처 부근이 진동했다.

  “제가 어떻게 말합니까? 위로랍시고 이해한다고는 하지만 진짜로 전부 이해할 수 없는 게 사실인데.”

 

  “보스는 당연히 신경 쓸 거 없다고 할거고요. 아까처럼.”

  “그래서 그냥 잘 지내는지. 잘 지내셨는지. 가끔 얼굴이나 보자고 하려고 했는데요.”

  “안될 것 같습니다.”

  “뭐가.”

 

 

카일이 잠깐 말을 멈추고 인위적으로 웃으며 맥주를 들이켰다.

 

 

“보스 혼자 이렇게 크리스마스 보내는 거 그냥 못 두겠다고요.”

 

“같이 노래라도?”

 

 

  목이 아팠다. 칼에 찔렸던 고통 때문인지. 이 어리숙한 위로에 벅차오른 탓인지.

  리스는 묵직하게 목을 누르는 무거운 감정에 숨을 참았다. 의자 등받이에 깊게 몸을 기대자 캐롤을 흥얼거리던 카일의 목소리가 멈춘다. 리스는 눈을 감았다. 뭔가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냥 옆에만 있겠습니다.”

  “네가 왜.”

  “외로우시니까요. ...그리고,”

  뭔가 말하려던 카일이 멈춘다. 남은 맥주를 한입에 털어 넣은 카일이 잠시 숨을 고르고 리스를 바라본다. 의자에 기댄 채 가만히 눈을 감은 리스의 목을 쓸며 다시 상처를 드러냈다. 쳐내는 손길은 없었다. 천천히 눈을 뜬 리스가 시선을 돌려 카일과 눈을 맞춰왔다. 피가 맺힌 상처 위로 카일의 손가락이 닿아온다.

 

 

  “다신 이런 것도 못 하게 감시하려고요.”

  리스는 다시 눈을 감았다.

 

 

  “맘대로 해.”

 

 

 

 

 

 

 

✼ ✼ ✼

 

 

 

 

 

 

 

 

  “으- 밖에 눈 장난 아닙니다. 올해도 화이트 크리스마스겠어요.”

  “그러게 같이 가자니까.”

 

 

  양손 무겁게 들었던 봉투를 리스에게 넘긴 카일이 눈으로 뒤덮인 모자를 벗어 툭툭 털어낸다. 익숙하게 코트를 벗어 문 앞 옷걸이에 걸고 젖은 신발을 현관 앞에 세워둔 카일이 주방으로 향하는 리스의 뒤를 쪼르르 따라 걷는다. 봉투 안에 내용물을 하나씩 꺼내 테이블에 놓던 리스가 뒤로 다가온 카일을 슬쩍 밀어냈다.

 

 

  “몸부터 말려. 감기 걸린다.”

  “같이 정리하고요.”

 

 

  카일은 꿋꿋하게 테이블에 놓인 것들을 냉장고에 받아 넣었다. 고집은 진짜. 고개를 내저은 리스가 이젠 좀 가라며 젖은 어깨를 밀어보지만 되려 소파에 앉혀진 건 리스였다. 꿀 두 번. 맞죠? 카일은 웃으며 리스의 손에 리모컨까지 쥐어주고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물소리가 들리고, 가스 불 켜는 소리와 컵을 꺼내는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듣기 편안했다. 곧 카일이 젖은 옷을 벗으며 주방에서 나온다. 오늘 영화는 보스가 고르십쇼. 한마디를 던지고 방으로 사라져버린다.

 

  작년 크리스마스. 맘대로 하라는 리스의 말을 시작으로 카일은 단 하루도 리스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여기서 머물 거라면 짐이라도 가져오라는 리스의 말에도 사면되죠.라는 말과 함께 체크무늬 셔츠만 잔뜩 사 온 적도 있었다.

  ‘...다음에 옷 살 땐 같이 가.’

  ‘왜요?’

  ‘이거까지 맘대로 하게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예?’

  아무튼 다양하게도 맘대로 구는 카일 덕에 눈 깜짝할 새 1년이 지났다. 그다지 말이 많은 편이 아님에도 넓지 않은 이 집에 한 사람이 더 있다는 것 하나로 공간이 가득 찬 것 같았고, 말하지 않아도 리스의 취향이나 습관들을 알아가고 배워가는 카일이 편했다. 지금도 그렇다. 물 끓는 소리에 젖은 옷만 벗어낸 채 맨몸으로 뛰쳐나온 카일이 익숙하게 커피를 내린다. 리스의 취향에 맞춰 꿀을 넣고, 제 몫의 커피잔엔 얼음을 넣는다. 꿀을 섞던 스푼을 입에 문 채 거실로 나와 리스의 손에 커피를 주고 나서야 화장실로 들어선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카일에겐 언제나 리스가 먼저였고, 다음이 뭐가 됐든 마지막은 카일 본인이었다. 그 과한 배려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지만 무심한 듯, 그게 당연하다는 듯 구는 카일 덕에 불편을 느끼진 못했다.

 

  고백 아닌 고백을 들어버린 뒤라 문득문득 내 어디가 좋아서? 라거나, 카일의 모든 행동이 좋아한다는 감정에서 시작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미안해지기도 했지만, 그것 또한 떨쳐내 주는 역할은 카일이었다. 리스는 덕분에 여유를 되찾았고, 기대는 법을 새로 배웠으며, 다시 웃을 수 있게 됐다. 손님을 맞이할 수 있게 옷걸이도 생겼고, 여분 슬리퍼도 생겼다. 언제든 위험에 대처할 수 있게 무기로 가득 차 있던 냉장고도 이젠 제 역할을 하고 있었고, 낮고 작았던 테이블도, 단 두 개뿐이었던 낡은 나무 의자도, 전부 변했다.

 

 

  “영화 골랐어요?”

 

 

  어느새 샤워를 마친 카일이 소파 끝에 걸터앉았다. 아직도 켜져 있지 않은 티비를 보고서야 아 여태 뭐 했습니까? 라며 툴툴거린다. 얼음 덕에 차갑게 식은 커피를 마시며 리스의 손에 들린 리모컨을 빼앗아 든다. 몇 번 삑삑거리며 조작하는가 싶더니 결국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들이 나오는 채널에 멈춘다. 잔잔한 소음이 울려 퍼진다.

 

  그리곤 고요하다. 리스는 이 고요함이 좋았다. 카일은 처음부터 그랬다. 오늘은 좀 괜찮냐느니, 기분이 어떻냐느니 눈치 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리스의 옆에 있을 뿐이었다. 대신 한 가지. 리스의 침실에 있던 날붙이들은 모조리 카일에게 수거당했다. 리스는 그냥 카일이 하고 싶은 대로 뒀다. 어차피 더 이상 그럴 생각도 없었으니까.

 

  영화는 이미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리스는 딱히 로맨스 장르엔 취향이 없었기에 덤덤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리스에게도 익숙한 고백 장면이 나온다. 자기도 모르게 오- 하고 감탄사가 튀어나오자 카일의 시선이 느껴진다. 괜스레 뻘쭘하다.

 

 

  “왜?”

  “왜요?”

  “쳐다보길래.”

  “뭐라 말하시길래요.”

  “아는 장면이라.”

  “뭐... 고전이잖아요.”

 

 

  카일의 고개가 다시 티비로 돌아간다. 그리고 또 고요해진다. 이번엔 멍하니 영화를 보던 리스가 카일을 바라본다. 영화에 집중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얼굴이 고민으로 가득했다. 크리스. 하고 작게 부르자 놀란 듯 고개가 홱 돌아선다.

 

 

  “왜 그래?”

  “아닙니다.”

 

 

  아닌 게 아닌데... 리스가 찝찝한 표정으로 시선을 거두지 않자 커피잔을 내려놓은 카일이 옆에 붙어 앉아온다. 몸이 닿지 않을 정도로만 가깝게. 팔걸이에 기대어 편하게 앉은 리스와는 다르게 허리까지 꼿꼿이 세운 채 정자세로 앉은 카일이 흠- 하는 소리를 내며 보스- 하고 리스를 부른다. 리스는 말하라는 듯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번 크리스마스가 되면 하고 싶었던 말이 있습니다.”

  “뭐, 좋아한다고?”

  “아- 아니. 보스!”

  “왜? 아니야?”

  “아니, 맞긴합니다만... 너무하십니다. 낭만도 없으십니까? 저런 영화를 보면서도.”

  “영화는 영화잖아.”

 

 

  카일은 분한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나도 그래.”

  “예?”

  “이젠 네가 이 집에 없다고 생각하면 좀 이상하기도 하고.”

  “이 좁은 소파에서 몸 구기고 자는 것도 더 이상 안 했으면 좋겠고.”

 

  “네가 타주는 커피가 좋아.”

 

  “그래서 생각해 봤지. 이 정도면 좋아한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하고.”

  “....뭡니까 그게. 확실하게 해 주십쇼.”

  “그래. 좋아해. 나도.”

 

 

  확실한 답을 재촉해놓고 정작 복잡한 얼굴을 하는 건 카일이었다. 목 끝까지 빨갛게 붉힌 주제에 또 고민 가득한 표정이다.

 

 

  “왜 그런 표정이야.”

  “한 번만 안아봐도 되겠습니까?”

 

 

  푸핫! 웃음이 터졌다. 리스가 자기도 모르게 크게 웃어버린 덕에 카일의 얼굴은 곧 터질 것처럼 더 붉어졌다. 이젠 귀 끝까지 빨갛다.

 

 

  “왜 웃으십니까. 저 진지합니다.”

 

  “보스가- 그러니까 그게 헷갈릴 수도 있는 거고, 막상 그런... 접촉 같은 게 있으면 생각이 달라지실 수도 있고,”

  “시끄러워.”

 

 

  카일의 말을 끊은 리스가 먼저 카일의 뒷목을 잡아 품에 확 끌어당겼다. 카일은 리스의 가슴에 얼굴이 박힌 채 어정쩡한 자세로 굳어버렸다. 두근- 두근- 작은 파동이 카일의 얼굴을 타고 전해져온다.

 

 

  “들려?”

 

 

  품속의 카일의 고개가 작게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답이 됐어?”

  “예...”

 

 

  그제야 카일의 손이 리스의 등을 향했다. 잠시 머뭇거리며 등 언저리를 떠돌던 손이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강하게 끌어당긴다. 좋아합니다. 많이요. 카일은 리스의 어깨에 얼굴을 박은 채 계속해서 웅얼거렸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외롭지 않겠네.”

  “그다음도 외롭지 않게 해 드릴 겁니다.”

 

 

  이젠 더 이상 옆집의 노랫소리 따위 부럽지 않게.

 

 

  Last lonely Christmas.

  Merry Christmas.

 

 

 

 

 

  I'm here for you still

  제가 늘 당신 곁에 있을게요.
  And even if you don't think that I'm near

  제가 당신의 옆에 없다고 생각이 들 때에도
  I'll still be right next to you, my dear

  저는 항상 당신 옆에 있습니다. 내 사랑.

w. 다말랑_@damalang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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