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 It's Cold Outside.
콜린브랫
“이제 가야 해.”
내일이면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애들 선물을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불러낸 콜린에, 브렛은 그것이 핑계임을 알면서도 응했어. 오랜만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잦은 만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매일 같이 살던 때와는 정말 많이 달라서, 브렛은 콜린이 만나자고 할 때면 거절하기가 어려웠음. 먼저 갈라서자고 한 것은 자신인데도.
얼굴도 봤고, 또.. 어쨌든 콜린이 불러낸 소기의 목적인 아이들 선물 사기는 달성을 했으니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음. 두사람은 이제 공식적으로는, 이혼한 사이니까.. 브렛은 이혼 후 처음 맞는 연말이, 어째서 이 남자를 만나기 전에도 매년 맞이하던 그때와 다른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갓 스무살이 되어서 만났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함께하지 않았던 연말이 없었어서 그런걸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헤어져야 한다는 것에 싱숭생숭해지는 기분을 감추면서 애써 단호하게 말했지만, 브렛의 눈썹이 살짝 쳐진 것을 그에게 온통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콜린이 못 알아차릴 리 없었지.
“여보, 밖이 많이 추운데..”
콜린이 조수석을 향해 몸을 완전히 틀어 브렛을 바라보며 말했음. 밖을 오래 걸었던 탓인지 동그랗지만 위로 예쁘게 뻗은 코끝이 히터를 틀었음에도 발갛게 물들어 있었음.
“애들도 기다리고..”
머뭇거림이 담긴 목소리로 브렛이 눈을 피하며 말했어.
“애들도 이제 다 컸잖아.”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당신 애들이 몇 살인지 기억은 하는 거지?”
브렛이 눈을 가늘게 뜨고 콜린을 쳐다봤음.
“내가 그걸 어떻게 잊어, 당신이 얼마나 애들 낳을 때마다 얼마나 힘들었는데. 아직도 날짜도 시간도 다 기억난다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이지만, 콜린이 아이들의 생일을 절대 잊지 못하는 건 아이를 낳을 때마다 고생을 많이 한 브렛때문이었지. 아무리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해도, 브렛에 비할 수는 없었음. 브렛이 저 때문에 마음고생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 속상해 이혼하자는 말에도 동의하고 말 지경이었으니 말 다했지. 브렛도 그 사실을 아는지 뾰족한 눈으로 콜린을 한번 더 흘겨보고는 다시 제 뭉툭한 손 끝으로 시선을 내렸음. 자신에게 고정된 새파란 눈동자를 마주 보면, 가겠다는 말이 자꾸 다시 들어가려고 했으니까.
“아무튼 애들이 오웬을 잘 따르긴 해도, 오웬도 아직 어리고..”
“큰 애는 내년이면 고등학교 졸업반이잖아.”
“그런다고 학생인 게 달라지나? 이제 정말 가야 해. 당신도 내년엔 나 말고 다른 사람이라도,”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콜린이 브렛의 손을 잡았음. 제 손끝을 바라보고 있던 브렛의 눈이 갈 곳을 잃고 잠시 허공을 배회하다, 결국 저를 바라보는 눈을 마주 봤음.
“손이 얼음장같은데, 몸 조금만 더 녹이다 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손발이 찬 브렛의 손을 항상 꼭 잡고 다니던 콜린의 손은 늘 그래왔듯이, 브렛을 바라보는 눈만큼 뜨거웠음. 보통 남자의 손 크기보다 훌쩍 큰 콜린에게도 넘칠만큼 커다란 브렛의 손이지만, 콜린은 늘 소중한 것을 쥐는 것처럼 약하지만 단단하게 마주잡고, 차가운 손가락 끝을 부드럽게 문질러주었어.
“시간이 벌써 많이 늦었어.”
브렛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서 속삭이듯 흘러나왔음. 붙잡힌 손을 살짝 흔들자, 콜린의 입매가 부드럽게 휘어지면서 가만히 웃더니 조용한 차내에 음악을 틀었어.
“예쁜아, 캐롤도 함께 듣지 못했잖아. 조금만. 응?”
아이들의 선물을 사기 위해 어느 곳을 들어가도, 가는 곳마다 흘러나온 노래가 캐롤이었는데.
콜린의 말도 안되는 두번째 핑계를 또 모른 척 무언으로 수긍하다가, 오늘은 어쩌면 오랜만에 데이트 코스를 함께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쇼핑을 갔다가,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둘 다 이대로 헤어지긴 아쉬운 마음에 추억이 가득 담긴 오래된 차를 타고 근교에 드라이브까지. 그래놓고도 아직도 아쉬워서 보내주지도, 가지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다니. 마음이 다시 약해지려고 했음.
“애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콜린을 나오려는 웃음을 슬쩍 참았음. 저녁을 먹을 때 큰 아들인 오웬에게서 온 메시지가 떠올랐지. ‘내년 크리스마스는 다시 함께 보낼 수 있게, 오늘만 양보해드리는 거예요.’ 큰 아들의 응원도 등에 업었는데,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지.
브렛의 손끝이 이제 온기가 도는지 더는 차갑지 않았음. 콜린은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얽어 손깍지를 끼었음. 그리고는 브렛의 올리브색 눈을 바라봤음.
“밖이 많이 춥잖아.”
똑바로 마주보지 못하고 눈을 피하는 브렛에 다그치지 않고 콜린은 그저 조용히 미소 지으면서 말을 이었어.
“이제 마침 눈도 오네.. 대학 다닐 때 같다. 그렇지?”
때마침 내리는 눈도 콜린을 밀어주는 것 같았지. 콜린은 자연스럽게 브렛의 손을 잡아당겨 손등에 입을 맞췄음. 눈은 브렛에게 고정된 채였지. 차가운 색을 가진 콜린의 눈이 얼마나 뜨거워질 수 있는지 브렛은 잘 알았어. 마치 지금처럼.
"그때도 지금도 당신은 너무 사랑스러워서, 나는 여전히 당신 옆에 있으면 손을 가만히 있기가 어려워."
콜린의 왼손이 어느새 브렛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어. 그래도 헤어진지가 벌써 반년이 넘게 지났는데, 그의 손에는 아직도 결혼 반지가 남아있었지. 펜과 종이만 쥐느라 크기만 크지 말랑거리는 자신의 손과는 다르게 현장업무를 뛰는 특수부대팀이라 굳은살이 잔뜩 배긴 단단한 손이 뺨에 닿자 브렛은 습관처럼 고개를 기대고 말았음. 입술을 문지르는 손길이 느껴졌지.
정말로 그때나 지금이나, 수작질은 똑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브렛은 눈을 감았어.
"애들한테는 당신이 전화해."
"그래. 밖이 많이 추우니까, 오늘은 당신을 따뜻하게 해주고 내일 집으로 보내주겠다고 할게."
콜린이 씩 웃으면서 브렛에게 입을 맞췄음. 장난기가 담긴 목소리에 브렛이 콜린의 목에 팔을 감으려다가 등을 한 대 내려치고 말았어. 하지만 코 끝을 마주대 오는 콜린에 결국 웃으며 다시 입을 맞출 수 밖에 없었지.
"정말..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오늘은 너무 춥고 눈이 내리니까, 그래서 그렇다고 생각할거야."
콜린이 보드라운 브렛의 뺨에 한 번 더 입을 맞추고 차를 돌렸음.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색색의 조명과 오너먼트들이 장식된 길거리에 쌍쌍의 커플들의 저마다 행복한 모습이 창밖으로 지나쳤어. 브렛이 여전히 발긋한 뺨으로 운전을 하는 콜린에게 시선을 고정했음. 손 끝이 차갑다는 핑계로 맞잡은 손은, 여전히 깍지를 끼고 있었지. 브렛은 엄지손가락으로 콜린의 손을 한번 쓸어봤어. 콜린의 입꼬리가 다시 위로 올라가는걸 보고는 피식, 결국 브렛도 웃고 말았어.
조금 전까지 아주 조금씩 내리던 눈송이가, 새하얗게 날리고 있었음.
W. 익명_5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