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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비 절찬 발정 중!
필댄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여기서 조금만 더 비틀거리면 여태 쌓아뒀던 쓰레기가 쏟아질걸 아는데도, 술에 취한 몸뚱이란 쉽게 제어되는 법이 없다. 빌어먹을. 희뿌연 시야가 쉴 새 없이 일렁인다. 파도 위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소금밭 한가운데에 빠진 것 같기도 하고. 제멋대로 휘적대는 두 다리에 안간힘을 줘봤지만 별 소용없는 짓이다. 웨넥 선생님. 멀리서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다급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스멀스멀 웃음이 샌다. 얼굴 근육이 온통 슬라임으로 돌변하기라도 한 듯이, 흐물흐물. 물렁물렁. 나 지금 괜찮게 웃고 있는 거 맞나? 아, 그냥 저 큰 손으로 어디든 좀 주물러줬으면 좋겠는데. 

  그때 문득 내 아랫도리가 제자리에 붙어있는지 확인해야겠다는 충동이 일었다. 당장 몇분 뒤에 쓸지도 모르는데 깜빡하고 화장실에 놔두고 왔으면 안 되잖아. 그건 진짜 안될 일이지. 나는 얼른 내 바지 속을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그 순간, 땅 밑이 꺼지고 온 몸이 붕 뜨는 듯한 아찔한 감각이 휘몰아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돋아난 털들이 마치 가시처럼 삐죽삐죽 기립하기 시작한다. 서라는 놈은 안 서고 니들이 왜. 내내 빙글빙글 도는 시야로 익숙한 구둣발이 보인다. 필 선생님. 또 한 번 그 목소리가 날 부른다. 전보다 훨씬 더 가까워진 거리였다. 별 수 있나. 난 거의 반사적으로 한쪽 팔을 휘휘 내저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내 귓가로 무언가 우수수 쏟아지는 소리만 나지 않았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어? 내 콘돔들이다. 나는 황급히 고간을 더듬었다. 그런데 잡히는 게 없었다. 씨발, 설마... 내 물건의 흔적을 필사적으로 찾으려던 내 몸 위로 따듯한 손길이 닿았다. 이런 미친! 비상이다. 하필 이런 때에. 이대로 좆이 부러졌단 사실을 들켜버린다면 오늘 밤의 역사는 전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넘겨야 했다. 그래서 놀란 표정이 된 그를 향해 태연한 척 외쳤다. 댄 쌤! 내가 좆을 잠시 화장실에 두고 왔나 봐! 그러자 녹색의 눈동자가 더욱 경악으로 물들어간다. 제길. 아랫도리 사정을 벌써 들킨 모양이다. 나는 좌절했다. 원래는 튼튼한 놈이야... 오늘은 좀 부끄럼을 많이 타서 그래... 자꾸 말을 뱉을 때마다 고막 가장 깊숙한 곳에서 삐- 하는      경고음이 울렸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 입은 여전히 변명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왜냐고? 부서질지언정 결코 꺾이지는 않는 것이 나의 ㅈ... 

 

 

 

*   *   * 

 

 

 

  누가 관자놀이에 총을 쏘고 튄 게 틀림없다. 이토록 골이 깨지는 고통은 그날 이후로 간만이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끙끙 앓는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대체 얼마나 마셔댄 건지는 모르겠다만 이불 감촉이 낯설 정도인 걸로 봐선 오늘 하루는 통째로 글러 먹었다는 거겠지. 숨을 뱉지 않아도 사방에서 술 냄새가 아주 진동을 한다. 이쯤 되니 대체 집을 어떻게 기어들어 왔는지가 의문스럽다. 

 

  폭신한 매트 위로 두통에 절인 뒤통수를 문질렀다. 침구에 코를 박고 숨을 들이마시자 이름 모를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으음... 좋은 냄새. 이게 뭐라고 고작 몇 번 킁킁 대는 것만으로 두통이 조금씩 사그라든다. 확실히 내 향수 냄새는 아니다. 내 것은 이것보다 훨씬 짙고 무거운 향이었으니까. 뭔가 이상한데. 나는 두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오늘따라 천장에 매달린 전등 모양이 낯설다. 

 

  순간, 나는 총이라도 맞은 듯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잘 잤어요?" 

  천장을 한 번, 좌우를 한 번, 정면을 한 번. 마주친 두 눈을 비비고 또 비벼봐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익숙한 얼굴의 남자는 분명 댄 포레스터였다. 군인 출신이라 하기엔 인상과 눈매가 순했고 과학 교사라 하기엔 지나치게 가슴이 큰, 내 애인 댄 포레스터 말이다. 

  "꿈이 아니었네요." 

  나와 오묘한 거리를 두고 선 그의 표정에서 혼란과 복잡함이 투명하게 드러났다. 말하면서도 믿기지 않는듯한 말투였다. 지금껏 이만큼 당황에 빠진 댄 포레스터를 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위해 노력했다. 방금 막 샤워를 마친 듯한 멀끔하고 단정한 머리. 평소보다 더 아래로 처진 눈매와 불안한 시선 처리. 그리고 셔츠 위로도 단연 돋보이는 가슴. 그러니까 우리가... 상황이 파악되니 멍청하게 입이 벌어진다. 댄 포레스터와 내가 드디어... 오. 와우. 

  - 댄 쌤. 가슴 아니, 엉덩이는 괜찮아?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질문이었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댄을 보자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던 노력이 단숨에 무너져내린다. 이렇게 되면 반드시 어젯밤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어제는 연말 파티 겸 신규 교사들을 환영하는 뒤늦은 회식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사립학교 교사들의 술자리란 지루하기 짝이 없는 모임이다. 차라리 점심시간이 끝난 애들 앞에서 수학의 역사를 읊어주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평소 재미없는 인간들은 술에 떡이 되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걸 되풀이하기만 하는 시간이니까. 어쨌든 간에. 적당히 취기가 오른 선생들은 입을 모아 타깃을 고르기 시작했다. 올해 신규교사는 겨우 둘뿐이라 멀리 갈 것도 없었다. 개 중에서 댄 포레스터는 아주 좋은 표적이 되었다. 전근을 온 지 약 반년이 흘렀음에도 그에 대한 관심들은 여전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결국, 눈여겨 보던 선생들이 나뿐만은 아니었단 의미다. 물론 그들과 현재의 내 위치는 현저하게 달랐지만. 

  시간이 지나 대부분이 흥미를 잃을 만큼 취했을 때조차 댄의 술잔은 한시도 빌 틈이 없었다. 씨발 사람을 잡지 그냥. 당장 다음날부터가 연휴인 건 알고 있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비밀연애고 뭐고, 결국 더는 참지 못하고 그의 술잔을 모조리 빼앗아 들었다. 댄이 가지고 있을 나에 대한 호감도에 가산점을 받을 차례이기도 했다. 이래 봬도 점수에 꽤 민감하거든. 왜? 연애 초기엔 다 그렇잖아? 

  일단 기억은 여기서 끝이다. 어차피 기억이란 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돌아오게 되어있으니 너무 서두르진 말자고.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궁극적인 질문부터다. 

  - 그렇게 서 있어도 돼? 

  나는 댄의 얼굴 그리고 그 아래를 응시했다. 

  - 내가... 들어갔잖아. 밤새. 

  "네?" 

  대답이 한 템포 늦게 돌아온다. 어딘가 애매모호한 눈빛을 한 댄이 나를 관찰하듯 시선을 굴렸다. 뭐지? 어째선지 내 앞에 선 댄의 그림자가 끝 없는 거인처럼 느껴졌다. 일개 선생이라기엔 지나치게 건장하긴 했어도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다. 내가 비정상적으로 줄어든 게 아닌 이상 이 정도로는... 

  - 어? 

  "죄송하지만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댄의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 메아리친다. 그와 동시에 메슥거리는 속과 불안감이 어지러운 머리 속을 에워쌌다. 온 몸이 아래로 훅 꺼지는 느낌이 영 불쾌하다. 

  ...씨발. 나는 이 좆같은 감각을 알고 있다.  

  "...필?" 

  그에게 대답하는 것도 잊고 내 손을 들여다봤다. 하얗고, 작고, 빌어먹을 만큼 복슬복슬한 털. 그 짜증스러운 모든 것들이 이미 내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그럼 우리 섹스는? 상황을 인식하자 속이 급격하게 울렁거린다. 어느새 다가온 댄이 눈높이를 맞춰 무릎을 굽혔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지만 숙취... 때문에 오늘 하루는 안정을 취하는 게 좋을 겁니다. 수인화도 금방 조절할 수 있을 거라고 했으니 그 점도 안심하세요." 

  마치 어린 아이를 대하듯 말투가 조심스러웠다. 나는 고개를 들어 녹색의 눈동자와 마주했다. 아직 혼란스러움이 묻어나 있었으나 거북해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한참을 꿈지럭거리는 내게 댄이 선뜻 손을 내민다. 

  "수인이셨군요." 

  네. 수인이셨습니다. 많이 놀랐지? 분명 그렇게 말한 줄 알았는데, 막상 뾰족한 주둥이에서 쏟아져나온 건 대답이 아닌 역겨운 액체들이었다. 이런 씹. 한 번 터진 토악질은 멈출 줄을 모르고 오물 섞인 진흙탕처럼 역류한다. 뒤늦게 입을 틀어막아봤자 댄의 손바닥은 이미 엉망진창으로 젖은 뒤였다. 

  그래, 족제비도 실수를 해. 징그럽도록 다 큰 인간이 하는 것보단 덜 추하잖아. 안 그래? 

​ 

  철회한다. 추잡한 실수에 무게란 없다. 내가 내뱉은 토사물로 범벅이 된 댄의 손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과 싸우고 있다. 심지어 그 뒤로도 쓰레기 같은 내 행태는 끝이 없었다. 아무 말 없이 더러운 털 주둥이를 닦아주던 생채기투성이의 손. 족제비의 손톱은 길고 날카롭다. 나는 그 손을 보고서야 내가 밤새 저지른 일들을 모조리 기억해냈다. 기껏 어렵게 찾아간 야간 수인 전문병원에서 죽어라 발광을 쳐댄... 미친 족제비를. 

  일반 동물병원은 수인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을 평범한 인간들은 알 리가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수인은 희귀했고 그냥 동물과는 달리, 다시 인간으로 변했을 때의 보험 또는 건강 이력, 지급해야 하는 금액의 정도가 달랐으니까. 병원 입장에선 수인에 관련된 여러 복잡한 문제들과 얽히는 걸 꺼렸다. 만약 여기서 보호자까지 부재중인 경우라면 골치 꽤 아팠을 것이다. 다행히 난... 그런 최악의 경우는 아니었다. 강제로 임시보호자가 된 댄과 담당 의사의 생각은 조금 달랐을 테지만 말이다. 

  어제 만난 의사는 의료용 장갑 위에 또 다른 장갑을 겹쳐 끼워야 했다. 술 냄새 풍기는 난폭한 족제비를 진료하기 위함이었다. 이게 바로 수인의 단점 중 하나다. 사람일 때는 쉬이 버틸 수 있을 일들이, 작은 털 뭉치가 되는 순간 숨 막힐 듯 거대하게 다가오는 문제 말이다. 몸집이 작을 수록 예민해진다는 법칙 또한 적용된다. 그중에서도 나는 특출나게 까다로운 편에 속했다. 남의 터치는 극도로 불편했고 고통의 역치는 낮았다. 

  다행히 의사는 진찰을 보는 데에 성공했다. 보호자의 가슴에 딱 달라붙은 채로만 진찰을 받는 어느 족제비 덕분이었다. 댄은 도통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나를 보며 몇번이나 내 상태에 관해 묻고 또 물었다. 병명이야 쉬웠다. 별것 아닌 술병과 발정기 스트레스. 전자는 무시해도 좋고 후자는... 나름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 원래 섹스란 복잡한 행위니까. 

  그런 드문드문하고 흐릿한 기억 속에서도 걱정이 가득 담긴 녹안만은 또렷했다. 특히나 난로 쿠션 같던 따듯한 가슴의 감촉도. 그리고 난 아마 그때도 토를 게워냈었지. 더럽고 개 같은 토를, 그 커다란 가슴 위에 잔뜩. 

  - 필 웨넥 이 미친! 

  회상은 끝났다. 댄이 더러워진 침구를 안고 사라지자마자 참고 있던 인내심이 기어코 폭발하고 말았다. 소리를 내지를 때마다 싸구려 인형 같은 효과음이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삑삑 터져 나왔다. 이 시끄러운 소리를 밤새 들었어야 했을 댄의 고막이 진심으로 걱정될 지경이다. 

  쓸데없이 기다란 몸에선 아직도 술에 찌든 냄새가 풍겼다. 전날에 뿌려둔 향수의 흔적은 전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나는 털에 벤 토 냄새를 떨치기 위해 침대 매트 위로 등을 벅벅 문질렀다. 족제비 상태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하는 이상행동 중 하나였다. 내가 멈추고 싶다고 멈출 수 있는 게 아니다. 원하는 만큼 저질러버려야 속이 후련해지는 예민한 족제비인걸 어떡하라고? 비록 상황은 꼬여버렸지만 함께 밤을 지새운 건 기정사실인 셈이니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그렇게 옆구리 밟힌 지렁이처럼 비비적거리는 데에 한참을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시선이 느껴지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그대로 꿈틀거림을 멈췄다. 

  문가에는 평소보다 커진 눈을 깜빡이는 댄이 서 있었다. 

  "아침... 만들려고요. 필요하면 부르세요." 

  머쓱함이 드러나던 얼굴이 재빨리 문밖으로 멀어져갔다. 그래. 처음 보면 이상할 수도 있어. 이런 족제비는 처음일 테니까. 하지만 댄도 금방 익숙해질 것이다. 다들 그랬거든. 

  ​그건 그렇고, 대체 무슨 수로 부르라는 거야? 개처럼 짖을 수도 없는데 난. 

  활짝 열어놓은 문밖으로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가만히 침대에 누워 '애인' 댄 포레스터의 안방을 뜯어보듯 관찰하기로 한다. 차분하고, 깔끔하고, 넓고. 아, 이건 지금 내 몸집이 지렁이보다 작아져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저 작은 협탁 안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콘돔? 딜도? 바이브레이터? 아니면 개 목걸이나 채찍? 당연히 어떤 물건이 튀어나오더라도 수용해줄 자신이 있다. 그게 뭐 별거라고. 

  '댄 포레스터의 은밀한 취미를 상상하기' 놀이도 어느덧 몇 십 분째. 탁자 위의 시계는 벌써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침이라고 하기엔 한참 늦은 시간인데. 삼시 세끼를 시간 맞춰 챙기는 타입은 아니었으나 그건 사람일 때의 경우지 지금은 얘기가 달랐다. 동물화가 되면 장기가 콩알 사이즈로 쪼그라들 텐데 배꼽시계는 칼 같아진다는 게 문제다. 거기다 동물적 감각과 온갖 본능이 예민해지는 것은 덤이었으며, 족제비들이란 대체로 참을성이 없었다. 

  아침 만드는데 뭐 이렇게 오래 걸려? 

  뭔가 음식 냄새는 나는 것 같은데 메뉴를 유추하기가 쉽지 않다. 난 더는 참지 못하고 침대 아래로 훌쩍 내려갔다. 어째 거실 쪽이 조용했다. 문턱에 걸쳐있는 긴 허리를 틀어 조금 더 앞으로 전진하자 다행히 테이블 뒤로 서 있는 실루엣의 끄트머리가 보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핸드폰을 노려보는 댄의 얼굴이 사뭇 심각했다. 저기서 뭘 하는 거지? 뚫어져라 핸드폰 액정과의 눈싸움을 벌이던 댄이 천천히 발걸음을 떼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향은 내 쪽이었다. 거인과 같은 긴 다리는 거침없이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곧이어 눈 깜빡할 사이에 머리 위로 시꺼먼 그림자가 진다. 어라. 이건 좀 위험할 지도. 

  - 음... 댄 쌤? 

  "헉!" 

  핸드폰이 바닥과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했다. 간발의 차이로 비껴간 슬리퍼의 밑창과 무릎이 아슬아슬하게 내 몸뚱이 근처를 딛고 있었다. 어떻게든 중심을 버티기 위해 바닥을 짚은 손은 시퍼런 핏줄을 세웠다. 사색이 된 댄의 숨결이 고스란히 내게 닿는다. 

  - 와. 나 방금 진짜 터질 뻔했다. 

  "괘, 괜찮...." 

  - 어엉? 난 괜찮아. 아직 하얀 거 보니까 멀쩡한가 봐. 

  나는 비적비적 두 발로 일어섰다. 꼬리도 무사하고 터진 곳도 없고. 하지만 댄은 곧바로 일어서질 못했다. 어지간히도 놀란 모양인지 그 어정쩡한 자세로 한참 동안 내 몸을 살펴보기 바빴다. 대화가 안 되니 원, 어쩔 수 없지. 차마 건드리지도 못하고 허공만 맴도는 손바닥에 대뜸 내 몸을 갖다 붙였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움찔거리긴 했어도 결코 나를 피하진 않는다. 난 그런 댄의 손을 탁탁 두드리며 몸짓 했다. 

  - 괜찮다니까. 다음부턴 그냥 두 발로 걸어 다닐게. 

  어차피 무슨 말을 하든 알아들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댄은 내 주절댐이 끝날 때까지 얌전히 눈을 깜빡이며 제 순서를 기다렸다. 내가 뭐라는 줄 알고 저렇게 경청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다만, 꼭 외국어 수업을 처음 듣는 학생처럼 내 말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여간. 몹쓸 장난은 못 치겠네. 

  이리저리 꼬리를 살랑대다 한껏 경직된 손바닥 위를 문질러주었다. 이것 봐, 나 멀쩡해. 그 간지러운 감촉과 맞닿고 나서야 댄은 살짝 표정을 풀었다. 

  그는 흐트러진 자세를 고쳐 잡으며 말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제가 부주의했어요." 

  - 뭐 그런 것 가지고. 신경 쓰지 마. 안 죽어, 안 죽어. 

  "... 괜찮다는 거겠죠? 제가 잘 이해한 거라면, 작은 신호라도 줄 수 있습니까? 예를 들면..." 

  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팔 한쪽을 붙잡아 안았다. 두 손으로 끌어안기에 딱 알맞은 두께다. 대놓고 그 두툼한 팔뚝을 간지럽게 주무르고 있으니 머리 위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네, 저도 이해했습니다. 이해가 조금 늦어서 미안해요. 수인을 만난 건 처음이거든요." 

  - 나도 미안해. 여기저기 토한 거 말이야. 그것도 두 번이나. 

  댄은 그저 가만히 내 모습을 응시했다. 내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려는 듯이, 고개를 약간 기울이기도 하면서. 

  - 방금 생각난 건데 다정한 것도 죄라는 말, 이제 좀 이해가 되려고 하네. 왜 매번 그런 식이야? 

  "음... 혹시 저, 혼나고 있습니까?" 

  그래도 선생이라고 그런 뉘앙스는 기가 막히게 알아채네. 내가 죽어라 들이대던 건 몇 달을 지나도 눈치 못 채더니. 괜히 지난 날의 고생들이 억울해진 나는 그의 팔에서 꾸물꾸물 기어 내려와 죄 없는 뱃가죽을 팡팡 두드려 보였다. 됐으니까 밥이나 먹자는 신호였다. 

  억울하지만, 그 신호조차 단번에 알아들은 댄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나를 식탁 위에 내려두었다. 아무래도 이런 몸 상태로 의자에 앉아 먹을 순 없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내 밥그릇만 바닥에 둔다고 했어도 받아들일 각오를 끝낸 참이다. 뭐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있지 않은가. 사람이랑 개를 헷갈릴 수도 있고,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래도 말이지... 이런 것까지는 예상 못했는데. 

 

  - 댄 쌤, 진심이야? 

  나는 천천히 내 접시와 그를 번갈아보았다. 누가 봐도 이건... 

  "...닭가슴살입니다." 

  - 응. 그래 보이네. 

  "찾아보니 닭고기를 가장 좋아한다고..." 

  - 응. 좋지. 닭고기. 

  "혹시 몰라서 작게 조각내긴 했는데, 보다시피 손재주가 없는 편이라 별로 잘 되진 못했습니다." 

  - 아냐 이 정도면 완벽해. 한입에 두세개씩 넣어도 거뜬하겠어. 고마워 댄 쌤. 

  멋쩍은듯 미소 짓는 그를 보자 깊은 고뇌가 스친다. 나는 다시 한번 내 접시 위를 확인했다. 아침 메뉴는 여전히 분홍색의 날고기 맞다. 의심할 여지는 없다. 냄새까지 완벽하게 날고기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사고의 저울이 인간의 방식으로 찔끔찔끔 기울어 멈춘다. 

  너무 레어인데. 

  조각조각 썰어진 닭가슴살은 한 입 크기로 정성스럽게 담겨있다. 불을 단 1초도 쓰지 않았는데 이걸 요리라고 할 수 있는지 슬슬 헷갈리기 시작한다. 아니지, 잘 생각해봐. 스시도 요리이긴 하잖아. 애인이 저 깜찍한 왕손으로 칼질까지 했는데 폐기물 양심이 되진 말자, 필 웨넥. 

  하지만 하루아침에 족제비로 변했다고 해서 잘 보이고 싶은 상대의 앞에서 날고기를 먹을 순 없지 않은가. 뇌까지 쪼그라든 짐승이 되어버렸다고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물론 스튜나 더그 녀석이 날고기를 내밀었다면 접시째 그 입 속에 도로 쑤셔 넣어줬을 것이다. 그 자식들에게 내 아까운 지능을 쓰는 건 멍청한 짓이니까. 

  나는 내 반응을 살피는 거대한 가슴 아니, 연인을 올려다봤다. 지난 밤, 내가 신세를 졌던 가슴은 셔츠 안에서 무언가를 기대하듯 보다 크게 부풀어 있었다. 

  "역시 익혀야...겠죠?" 

  내가 별 반응이 없자 댄의 표정은 이게 아닌가? 하는 고심과 당황 사이를 방황한다. 어쩔까. 본디 족제비란 턱만 달려있으면 뭐든 입 안으로 넣을 수 있는 동물이다. 수인이라는 특수한 경우에도 그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난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셔츠 단추에서부터 시선을 떼며 생각했다.  

  저 가슴이 이걸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그리 못 먹을 것도 없지. 

  사인이 생고기인 족제비는 없을 것이다. 나는 댄이 손수 건네준 고깃덩어리들을 오래된 껌처럼 씹어 삼켰다. 못 먹을 정도는 아닌데, 두 번은 먹고 싶지 않은 질감이다. 겨우 세 번째 조각을 꾸역꾸역 씹고 있을 때, 댄이 대뜸 내 턱 아래에 손바닥을 갖다 댄다. 

  "토할 것 같으면 억지로 안 먹어도 돼요." 

  까짓거 애완 족제비나 하지 뭐. 

  창 밖이 어두웠다. 고작 날고기 좀 먹었다고 깜빡 잠이 든 모양이다. 다행히 뒤집혔던 속과 컨디션은 돌아왔다. 참 단순한 몸뚱이란 말이지. 한껏 거실 소파에 늘어진 몸을 쭉 펴고 일어서려는데, 때마침 코트를 걸쳐 입던 댄과 눈이 마주쳤다. 댄 쌤, 어디가? 내 지긋한 눈빛에 흠칫 놀란 댄이 차키를 챙기다 말고 눈꺼풀을 깜빡인다. 내가 깰 줄은 전혀 몰랐던 눈치다. 그가 살짝 벌어진 입술을 뻐끔대다 말한다.  

  "마트에 다녀오려고요. 장을 좀 봐야 해서..." 

  아하. 그런데 뭘 그렇게 살금살금 움직여? 내가 방금 막 잠든 갓난애도 아닌데. 난 늘어져라 하품을 한 뒤 바닥으로 질질 내려갔다. 그리곤 의아해하고 있는 그의 바짓가랑이를 냅다 부여잡았다. 아니, 매달려있다는 표현이 맞겠다. 

  - 같이 가야지. 날 여기에 혼자 두려고? 진짜? 

  "......" 

  비어있던 한쪽 다리가 한발짝 물러나다 말고 멈춘다. 날 내려다보는 얼굴 위로 선명한 난처함이 떠올랐다. 

  "밤이라 좀 추운데..." 

  - 안 춥게 하는 법 알잖아. 

  팔 다리에 더욱 힘을 주고 그를 올려다봤다. 대치는 짧았다. 결국 먼저 백기를 든 댄이 짧은 한숨을 내쉬곤 몸을 낮춘다. 

  "불편하면 언제든지 말해줘요." 

  순식간에 그의 숨결과 가까워졌다. 내가 자리 잡은 곳은 코트 안쪽의 주머니였다. 정확히는, 댄의 가슴팍에 코를 파묻은 채 그 안락함을 누리는 중이라 볼 수 있다. 따끈하고, 폭신하고, 아주 쿠션이 따로 없구만. 운전하느라 올곧은 자세로 앉은 댄의 품 안에서, 난 연신 코를 킁킁 대며 잠시도 떨어질 줄을 몰랐다. 분명히 이 안에서 좋은 냄새가 나는데, 향수인가? 

  "저기, 조금 간지러운... 데요." 

  가슴이 크게 한 번 부풀었다가 곧 제자리를 찾았다. 고개를 빼꼼 내밀고 밖을 내다보니 차는 벌써 마트 주차장에 서 있었다. 아. 우리 장보기로 했었지. 

  이제 창피함이라는 감정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것도 지금 족제비라서 그런 거겠지. 나는 그의 품속에서 여유로이 상체만 내뺀 채 '장보기 물건'에 관여했다. 크리스마스 양말 세트? 저거 내 크기랑 딱이겠네. 난 사실 닭고기보단 소고기파야. 오, 그 체리 괜찮아 보이는데? 꼭지도 길고. 쉴 새 없이 떠들고 나불거리는 데도 댄은 얌전히 내가 말한 것들을 카트에 담아넣었다. 특유의 튀어나온 주둥이나 벅벅 긁으며 댄이 고르는 과일들이나 구경하고 있는데, 별안간 한참 낮은 곳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음? 뭐야? 난 허리를 쭉 내빼고 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날 째려보던 주인공은 대략 10살 가량으로 보이는 꼬맹이였다. 

  "만져봐도 돼요?" 

  "응?" 

  질문은 댄에게 해놓고 동그란 눈을 여전히 나를 향해 있다. 댄은 카트에 딸기를 담다 말고 꼬마를 돌아본다.  

  "페럿이에요? 근데 왜 거기에 있어요? 만지면 물어요?" 

  예상대로 질문 폭격이 쏟아진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초롱초롱한 눈빛에 구멍이 다 날 지경이다. 이래서 애들이란. 나는 힐끔 눈을 맞추는 댄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 문다고 해. 애들 손가락을 별미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놈이라고 해버려. 귀찮으니까.  

  "울음소리 되게 웃기다." 

  얼씨구. 어른한테 손가락질을 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 꼬마가 급기야 제자리에서 콩콩 뛰기 시작한다. 같은 눈높이에서 보고 싶은 노력은 가상하나 10살 꼬마에겐 어림도 없는 높이였다. 댄이 주위를 살펴보며 물었다.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저쪽에요. 트리 고르고 계세요. 엄청나게 큰 트리요." 

  짧은 손가락을 따라가니 정말 멀지 않은 곳에서 트리 고르기에 집중하고 있는 부부가 보인다. 꼬마는 의기양양하게 오뚜기처럼 몸을 흔들어댔다. 은근 부드럽게 타이르며 돌려보내려고 해도 앙다문 입매가 유독 고집스럽다. 그래, 쉽게 물러서면 어린애가 아니지. 

  "조금만 만져보면 안 돼요?" 

  그냥 한번 만지게 해줄까 아니면 이빨로 겁이나 줘버릴까. 어느 쪽이 더 빨리 끝날지 잠시 고민하던 사이, 댄이 코트 자락을 여미며 말했다. 

  "그건 곤란할 것 같아." 

  다정하지만 단호한 투였다. 가끔 학교에서 드물게 들을 수 있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그런 댄의 태도에 꼬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왜요?" 

  "다친 족제비가 아야 할 수도 있으니까 만지는 건 안 돼. 그렇지?" 

  순간 눈을 맞춰온 댄이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어... 와... 나는 멍하니 그가 웃는 걸 바라봤다. 이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라. 지금 내 표정이 얼마나 얼간이 같을 지는 모르겠다. 정신을 차렸을 땐, 난 내 두 팔을 뻗어 댄의 가슴팍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우리 사이에 틈은 없었다. 난 댄의 코트 안으로 내 몸을 감추듯 꾸물꾸물 기어들어 갔다. 

  "헉 두더지다." 

  내가 보이질 않자 그제야 꼬마가 기세를 누그러뜨리며 종알거린다. 

  "엄청 응석꾸러기인가 봐요." 

  댄은 머쓱하게 웃었다. 꼬마는 생각보다 쿨하게 떠났다. 부모의 부름에 쪼르르 달려가는 작은 뒷모습엔 일말의 미련도 없어 보였다. 바로 이런 게 애들의 유일한 장점이지. 쉽고 단순하단 거. 저 멀리 요란할 정도로 알록달록한 트리를 본 꼬마가 박수를 치며 기뻐한다.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가 뭐라고 저리 좋아하는지, 선물 받을 나이가 지난 성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출근 안 하는 거 하난 좋긴 한데 그 외에 다른 건... 

  나는 슬쩍 턱을 들어 댄을 올려다봤다. 그는 아직도 꼬마와 그 부모를 바라보고 있었다. 좀 전의 꼬마가 마음에 쓰이는 건지 아니면 갑자기 트리가 갖고 싶어지기라도 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딘가 상념에 빠져있는 눈동자에는 왠지 모를 아득함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처음 보는 낯선 얼굴. 나는 충동적으로 댄의 가슴을 콩콩 찧었다. 

  - 댄 쌤, 채소 말고 맥주나 좀 사놓자. 와인도 좋고. 

  

  연신 깜빡이던 눈동자가 초점을 되찾는다. 뒤늦게 심호흡을 하는 가슴이 느껴진다. 댄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범한 분위기로 돌아와 있었다. 

  "먹고 싶은 게 있어요?" 

  - 댄 쌤 가슴. 댄 쌤 엉덩이. 댄 쌤 버진. 

  댄이 눈매를 좁히고 날 바라본다. 혹시 뭐랬는지 알아듣기라도 했나? 

  "혹시 내가 못 알아듣는다고, 장난치고 있는 거 아니죠?" 

  귀신같네. 난 최대한 순수한 눈빛으로 댄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댄 포레스터는 죽어도 내 비밀스러운 속내를 알아채지 못할 테니까. 

 

 

 

 

  외출은 성공적이었다. 소통의 부재는 있었지만 내 반응이 적극 반영된 인간과 수인을 위한 장보기는 순탄하게 끝이 났다. 댄이 냉장고를 정리할 동안, 나는 활짝 열려있는 그의 노트북 화면을 훔쳐보기로 마음 먹었다. 나쁜 뜻은 없다. 노트북이 대놓고 켜져 있으니 딱히 훔쳐본 것도 아닌게 된다. 만약 훔쳐보더라도 족제비는 그럴 수도 있는 친구니까. 

  어디보자... 검색기록은 순 족제비에 관련된 질문들뿐이다. 내게 그 날고기를 삼키게 한 범인의 출처가 드디어 밝혀진 것이다. 족제비가 좋아하는 먹이는 닭고기, 생쥐, 개구리, 새, 벌레... 등이 있습니다. 그렇게 한참 심각한 얼굴로 핸드폰을 노려본다 했더니, 충분히 그럴 만 했네. 이걸 보면서 혼란스러워했을 댄을 상상하자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별다른 건 없었다. 그러니까, 난 절대 성인용품 주문내역이나 야동 취향 같은 걸 기대한 게 아니다.  

  응? 이건 뭐야? 

  발로 뒤로 가기를 잘못 눌렀을 뿐인데 다른 창 하나가 더 떠오른다. 

  [제목: 애인이 수인이란걸 숨겼어요.]

  황급히 글 작성자 이름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댄은 아니었다. 구구절절 적혀있는 글의 요지는 파트너에 대한 신뢰라던가 우울한 한탄 뿐이었다. 난 심드렁한 눈으로 대충 답변을 훑었다. 

   ㄴ헤어지세요. 그 분은 당신을 그만큼은 사랑하지 않는 겁니다. 수인은 원래 본인이 수인인걸 까고 사귈 텐데, 그쪽을 어지간히 안 믿나 봐요. 그 정도면 헤어지는 게 맞지 않을까요. 

   ㄴ 별로. 무슨 수인인지는 몰라도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 입에 털 들어가 있을 것 같아서 극혐인데요. 

   ㄴ엄청 상도덕 없는 수인 아님? 헤어지는 게 맞는 듯; 

  미친건가? 이게 뭔 개소리야? 결국 읽는 것을 포기하고 창을 죄다 꺼버렸다. 댄은 왜 저런 영양가 없는 쓰레기들을 보고 있었지? 나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는 걸. ...아. 내가 말을 안 했구나. 필 웨넥 이 멍청한 자식. 

  ​맹세코, 족제비 수인이란 걸 일부러 숨긴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좀 더 비밀스럽고 신비한 존재답게 고백을 하려고 했지, 이런 식으로는... 

  ​- 댄 쌤! 댄 쌤! 자기야! 

  "네?" 

  - 내가 다 설명할게. 절대 오해하지 말고, 내가 말할 수 있을 때까지만 기다려주라. 앞으론 궁금한 건 전부 나한테 물어. 저딴 쓰레기는 찾아보지도 말고! 

  갑자기 속사포로 쏟아지는 말에 댄이 과일을 씻다 말고 나를 돌아본다. 

  "지금 딸기 씻는 중인데, 딸기는 싫어요?" 

 

  - 아니. 딸기 줘! 

  족제비의 감정은 대체로 들쭉날쭉하다. 

 

​ 

 

* * * 

 

 

  숨 쉬기가 조금 버겁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힌 듯 이마와 코가 다 아려온다. 숨이 막힐 만큼 따듯한 온기가 좋긴 하긴 한데 어째 하반신 전체는 서늘하다. 뭐야? 나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조금씩 고개를 비틀었다. 그러나 자세를 바꾸는 게 영 쉽지가 않다. 누가 내 뒤통수를 잡아 누르고 있나? 다시 목 부근을 지렁이처럼 꾸물대자 이내 코 끝으로 작게 돋아난 무언가가 닿았다. 감촉이 신기해서 그걸 한참 문질러대고 있는데, 별안간 바닥이 흔들리며 크게 몸부림쳤다. 난 두 눈을 번쩍 떴다. 뒤늦게 어두컴컴한 시야로 보이는 건 온통 울긋불긋한 굴곡 뿐이다. 

 

  그때, 순식간에 뒤통수가 서늘해지고 눈부신 빛이 쏟아져 내렸다. 나는 한껏 찌푸린 미간을 긁으며 드디어 자유로워진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런 나를 첫 번째로 반긴 건 작디작은 핑크색 유두들이었다. 

 

  "오. 좋은 아침." 

  당연히 걔들은 답이 없었다. 슬쩍 시선을 위로 옮기니 자다가 괴상한 벌레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의 댄이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째려보는 건가? 어쨌든 댄은 황급히 제 티셔츠를 잡아 내렸다. 밤새 내 얼굴에 빨갛게 짓눌렸던 거대한 가슴이 금세 천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그리고는 내가 아쉬워할 틈도 주지 않고 내 어깨를 조금씩 밀어내며 말한다. 

  "내려와요. 무거우니까." 

  "아, 미안해. 어? 나 돌아왔다." 

  둘이서 동시에 움직이자 소파가 삐걱거리는 소음을 낸다. 잠깐 침묵을 지키던 댄이 어색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나를 올려다본다. 

  "저기, 필..." 

  "잠깐. 나부터." 

  해야할 말이 있어. 일어서려는 댄을 도로 앉히고 그 앞에 섰다. 더 이상 쓸데없는 일로 오해하게 만드는 건 사양이다. 

  "내가 수인이란 거, 끝까지 숨기려던 건 아니었어. 내가 사람 잡아먹는 무식한 맹수도 아니고 숨길 이유도 딱히 없으니까. 이건 그냥 어쩌다 보니 이렇게 미뤄진 거야." 

  난 거짓말을 꽤 잘하는 편이다. 하지만 맹세한다. 댄을 대할 때의 나는 단 한 번도 거짓으로 굴었던 적이 없었다. 그건 댄 또한 잘 알고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 같은 놈을 여기까지 받아주진 않았을 테니까. 

  "가끔은 나도 내가 수인이란 걸 까먹거든. 그래서 그래." 

  "......" 

  "나 족제비 수인이야, 댄. 당신한테 본모습을 전부 들켰으니 날 평생 책임져야 할지도 몰라." 

  뭐... 절반의 진실도 진실이긴 하니까 거짓말은 아니지. 나는 댄을 마주 보았다. 최대한 로맨틱하고 다정한 눈빛을 보내며 그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어째 돌아오는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게 아닌가? 

  곧이어 묘한 표정을 한 댄이 몸을 뒤로 물린 채 입술을 뗀다. 

  "알겠으니까... 옷부터 좀 입어요." 

  "응?" 

  난 멍청하게 내 몸을 내려다봤다. 아. 이런. 어느새 힘차게 일어나있던 내 아랫도리가 정확히 댄의 얼굴을 겨누고 있었다. 어쩐지 뭔가 허전한 것 같더라니. 아까부터 댄의 흐릿해진 눈동자는 이쪽을 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댄 쌤도 알다시피 아침에는 마음대로 안 돼. 알잖아? 난 예의 없는 그 녀석을 한손으로 조신이 잡아내렸다. 잠깐, 내 옷 어디 있지? 난 다시 덜렁이는 아래를 잡아내리며 댄을 바라봤다. 그러자 댄이 얼른 손가락을 들어 안쪽 방을 가리킨다. 

  "침대 옆에 있어요. 당신 옷..." 

  "응, 고마워." 

  그의 말대로 침대 가엔 내 옷가지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입기 전에 살짝 코를 대고 킁킁거리자 댄에게서 종종 풍기던 섬유유연제의 냄새가 난다. 

  "그래 나도 알아. 너도 내내 힘들었지." 

  내 아래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을 만큼 위로 치솟았다. 배에 바짝 달라붙어 있는 뜨끈한 좆을 보면서 난 주섬주섬 속옷과 바지를 꿰어 입었다. 또다시 족제비로 변하면 곤란하니까 욕구는 제대로 풀어줘야지. 그런데 어차피 꺼낼 거 왜 다시 입고 있냐고? 그거야 선물은 벗기는 맛이 있어야 하니까. 난 어제보다 완벽한 차림으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거울을 보니 얼굴도 꽤 나쁘지 않다. 댄에게 줄 이른 선물 또한 완벽하게 준비를 마친 참이다. 난 문을 열고 댄이 기다리고 있을 거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포장은 완벽하다. 댄은 정말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내 좆에는 크리스마스 양말이 끼워져 있다.

 

 

 

w. 땬_@ddan_b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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