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의 정의
페이스오웬
-치지직…, 새로 들어온…입니다……바이러스가……퍼져……우리는 그것을 ……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를 만난다면 반드시 …… -
하늘이 청명했다.
오웬이 자리를 잡은 곳은 365일 중 300일은 하늘이 맑았고, 바람이 잔잔하게 불었다.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아냈느냐고 물으니 어깨만 으쓱하는 게 그다웠다. 그곳에 오두막을 지었다. 오웬은 혼자 할 수 있다고 했지만 페이스는 이제 할 일도 없다며 거들었다. 에이팀을 그만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오웬의 옆에 있기로 한 이상 페이스는 더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한니발과 상의하에 긴 휴식기를 가지기로 했다. 오웬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했지만, 그 결정을 퍽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오두막에서 제일 가까운 식자재 마트가 차를 타고 두 시간은 걸리는 곳에 있었다. 거기서 한 시간을 더 가야 ‘도시’로 불릴만한 곳이 나왔다. 너무 거리가 있는 게 아니냐고 물으니 오웬은 그 정도 거리가 딱 좋다고 말했다. “혹시 사람이 싫어?” 페이스가 그리 물었을 때 오웬은 조용히 웃을 뿐 답을 주지 않았다. 페이스는 그 침묵과 웃음으로 어느 정도 대답을 유추해 낼 수 있었지만, 막상 한 달에 한 번 도시에 가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특별히 싫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가 만나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클레어와 어떤 여자아이였다. 페이스는 오웬에게 달려와 안기는 아이를 보고서 눈을 가늘게 떴다. 아이가 이것저것 묻자 오웬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해 주곤 아이를 안아 올렸다. “다른 검사는?” “이상 없대.” 클레어가 조금 지친 목소리로 대꾸했다. “바빠?” “조금.” 오웬은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가며 사무실 사람들과 인사했다. 페이스는 오웬의 뒤를 따라 걷기만 했다. 사람들과 눈을 맞추지도 않았고, 인사를 하지도 않았다. 오웬의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고개를 돌려 페이스를 보더니 홱 하곤 고개를 돌려 버린다. 그러곤 오웬의 귀에 속삭인다.
페이스는 그게 대번 제 흉이란 걸 알았다. 오웬이 아이를 내려놓고는 클레어에게 넘겨준다. 먼저 들어가 있어. 오웬이 뒤를 돌아보더니 페이스의 손을 잡고는 손님용 소파에 앉힌다. 오웬의 손은 아이를 안고 있어서 그런지 따뜻했다. 페이스는 그 손을 놓고 싶지 않아서 힘을 꽉 줬다가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힘을 빼고는 고개를 든다.
“템플턴. 인상 펴요.”
오웬이 살짝 발개진 손끝으로 페이스의 미간을 꾹 누른다. 내 인상이 뭐 어때서? 끝내주기만 하는데. 페이스가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양 뺨을 손으로 쫙 누르며 옆으로 펴자 오웬이 피식 웃더니 손위로 손을 겹쳐 잡았다.
“금방 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요.”
따뜻한 손. 페이스는 그 온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오웬의 몸은 남들보다 조금 더 따뜻했다. 뜨겁다는 말보단 미지근하단 말이 어울리는 온도였다. 그건. 그래……, 오웬의 몸은 따뜻했다. 손이나 발도 그랬고, 얼굴도 그랬으며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가슴도 그랬고, 움푹 들어간 배도 그랬다. 그 위로 손바닥을 대고 있으면 숨을 들이쉴 때마다 근육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오웬은 모진 사람이 되지 못했다. 사람을 싫어할 만한 일을 겪어도 모든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으며, 그가 사람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 보기 힘든 숲속 깊은 곳으로 들어간 건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였다. 그래서 사람을 보고 싶지 않은 거겠지.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페이스는 그가 지나치게 따뜻한 사람인 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놓고 싶지 않았다.
오웬이 그것에게 물린 건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페이스는 황급히 총으로 그것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오웬의 손을 살폈다. 선명하게 찍힌 잇자국만큼이나 오웬의 얼굴이 절망으로 선명하게 물들어갔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미국 전역에 퍼졌고, 그들도 그것을 피해갈 수 없었다. 페이스는 들고 있던 마체테로 오웬의 물린 손가락을 잘라냈다.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진 손가락 위로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그것들이 소리를 듣고 올까 봐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고통을 참아내는 오웬을 차에 태우곤 급히 상처를 지혈했다. 페이스는 스카프에 물을 적시곤 쭉 짜내 오웬의 얼굴을 닦아주곤 안전벨트를 채웠다. 자고 있어. 페이스는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걸 핸들을 잡고 나서야 알았다.
오두막은 차로 세 시간은 가야 했고, 아수라장이 된 도시에서 빠져나가는 데에만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페이스는 점차 가빠지는 오웬의 숨소리가 마치 시한폭탄의 초침 소리라도 되는 것처럼 불안에 떨며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선 앵커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미국을 집어삼켰다는 말만 반복했다. 빌어먹을! 페이스가 라디오를 내리치자 이번엔 노래가 흘러나왔다. 꽉 막힌 앵커의 목소리를 듣는 것보다 노래를 듣는 게 낫다는 생각에 가만히 두자 오웬이 몸을 일으킨다. 그가 라디오 주파수를 조절하더니 다시 뉴스 채널을 틀었다. 몇 번이고 같은 말만 반복하는 앵커를 앵무새라고 비아냥거리던 페이스는 핸드폰을 확인하는 오웬의 낯빛이 점점 질려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왜? 페이스의 시선은 여전히 앞을 향해 있었다. 사람은커녕 차 한 대도 보이지 않는, 끝도 보이지 않는 긴 시멘트 길이었다.
그는 페이스의 질문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서 핸드폰을 내려두더니 글로브박스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이번엔 페이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총알까지 확인한 오웬이 차를 세우라고 페이스를 재촉한다. 왜! 그러니까 도대체 왜 그러는데! 아무리 길에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이유 없이 차를 세우는 건 자살행위에 가까웠다. 페이스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더욱 차를 세울 수 없었다.
“이유를 말해!”
“당신한테 내 시체 치워달라고 하기 싫으니까요!”
오웬!! 페이스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가 미끄러지며 오웬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권총을 빼앗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런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페이스는 잘려나간 오웬의 왼쪽 새끼손가락을 꽉 쥐어짰다. 고통으로 비명을 지른 오웬이 권총을 떨어트리자 남은 다른 손으로 오웬의 오른손마저 고정해 의자 시트에 내리눌렀다. 양손을 결박당한 채 숨을 몰아쉬던 오웬이 떨리는 목소리로 부탁한다.
“놔줘요.”
“싫어.”
“템플턴.”
“설명이 먼저야.”
페이스가 핸드폰을 향해 턱짓하자 오웬이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물더니 이내 긴 한숨을 내쉰다. 고통이 점점 사그라들 즘 그가 입술을 달싹이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사실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뭘?”
“내가 뭐에 물린 건지.”
오웬의 말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정답이어서 오히려 대답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건, 그러니까 좀비니 워커니 혹은 바이트니 하는 이름이 붙은 그것들은 영화에서나 나오던 것들이었다. 물리면 전염되고, 전염된 놈들은 깡그리 죽여야 하고, 백신이 만들어질 때까지 고통스러운 삶을 영유해야 하는 그런 영화들에서나 나오는 것들 말이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그 불길한 예감 때문에 페이스는 오웬의 손가락을 잘라냈으며 오웬을 물고 있던 놈의 머리통을 총으로 날려버렸다. 알고 있었으니까. 그게 무엇인지. 이 빌어먹을 예감이, 날카로운 신경 줄을 타고 날아와 페이스의 이성을 고통스럽게 갉아 먹었다. 결박을 풀고 권총과 오웬의 핸드폰을 주워 든 페이스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여기서 있는 건 위험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오웬은 지쳤는지 더는 반항하지 않았지만 그의 옆에는 그 어떤 물건도 두지 않았다. 혹 그가 차에서 뛰어내릴까 봐 잠금장치까지 걸었다.
[오웬 그것들에게 물리면 40시간 이내에 온몸에 분노 바이러스가 퍼지게 되는 듯 해. 그러면 이성은 날아가고 분노밖에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거야. 아직 동물에게 전염성은 보이지 않지만 언제 변종이 나타날지는 모르는 일이야. 우리를 도와주지 않을래?]
페이스는 발신인을 애써 모른척한 채 핸드폰을 차창 밖으로 던져버렸다. 오웬은 페이스의 옆모습을 한참이나 보더니 손등으로 눈을 가렸다. 피로가 두 사람을 무겁게 짓눌렀다.
삶에는 이유가 필요하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었으니, 그것을 이어가야 할 이유 말이다. 고통스러운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야 할 이유. 고통 속에서 사는 삶을 견뎌낼 수 있는 이유. 페이스는 삶에 이유 따위 만들어두고 싶지 않았다. 죽기 직전 그 이유가 생각난다면 그건 살아있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될 터이니.
꽤 드라마틱한 인생이었죠. 오웬은 침대에 누워 그리 말했다. 이마는 불덩이 같았는데 손은 점점 차게 식어갔다. 그리 추운 날씨도 아니었건만. 이 숲은 지나치게 고요해서 오웬의 중얼거림도 크게 들렸다. 차라리 도시였다면 온갖 소음에 그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을 텐데. 페이스는 당장 일어나 그의 입을 틀어막을까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일단 너무 피로했고, 지쳐있었다. 앞으로 다가올 예정된 불행에 도망치고 싶기도 했다.
템플턴, 만약 내가. 오웬은 그 이후로 말을 하지 않았는데 잠이 들었는지 그저 말을 삼켰는지 페이스는 영영 알 수 없었다. 등을 돌리고 누워있었으니까. 생각해보면 그날은 우리가 처음으로 등을 돌리고 잔 날이었다. 원래 사람의 몸에선 냉기가 흘러나왔던가? 페이스는 자신의 등이 추위와 외로움을 잘 탄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다음날 오웬은 열은 내렸지만 몸은 여전히 차가웠다. 페이스는 벽난로에 장작을 넣고 집안을 뜨겁게 데웠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건 둘 다 알고 있었다.
우리는 멍청하게 열두시간 정도를 그냥 날렸다.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고, 타협하고 싶지도 않았다. 오웬은 벽난로 위에 있던 작은 라디오를 켰다. 건전지로 작동하는 거였는데 예전에 군에 있을 때 썼던 거라고 했다. 치지직………. 치직…………. 한참이나 말이 없는 라디오를 사이에 두고 페이스는 허공을 오웬은 바닥만 내려다봤다. 영원히 들리지 않았으면 했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만약 그것에 물리거나 이미 감염됐을 경우 사살……
쾅!!! 페이스가 라디오를 옆으로 던져버리곤 오웬을 제압했다. 벽난로 위에는 사냥용 엽총이 있었고, ‘사살’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오웬의 시선이 엽총으로 향했다. 빌어먹을! 페이스는 오웬의 명치를 가격해 기절시킨 후 집 안을 둘러봤다. 온갖 ‘무기’가 넘쳐났다. 하다못해 커튼까지 스스로를 죽일 수 있는 무기로 보였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지도 못한 채 창고로 향한 발걸음이 무거웠다. 땅을 밟을 때마다 이게 진짜 옳은 일인지 수십 번 생각했지만, 다른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페이스는 단단한 밧줄로 오웬의 몸을 벽기둥에 묶기 시작했다. 혹 혀를 깨물지도 모르니 입에 재갈까지 물렸다. 시간이 없는데. 페이스는 혹여나 그가 밧줄을 풀까 봐 무기마저 모두 창고에 처박아놓았다. 시간이, 페이스가 엽총을 들고 오웬의 앞에 섰다. 시간은 24시간도 남지 않았고, 오웬이 변하는 건 한순간일 것이다. 탄환을 확인한 페이스가 그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었다.
죽었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흔히 말하는 의학적 죽음의 정의는 심장이 멎고 호흡이 멎고, 근육이 굳어버리며 안구가 움직이지 않는 걸 죽음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렇다면 지금 오웬은 죽지 않은 걸까? 그는 움직일 수도 있고, 심장도 뛰며, 근육도 말랑말랑했다. 아, 이건 너무 오랫동안 묶어둬서 근육이 사라지고 몸이 말랑말랑해진 것에 가까웠지만 사후경직은 오지 않았다. 다만 달라진 건 사람의 말을 하지 못했고, 이성도 없었으며 사람을 보면 달려들기 바쁘다는 거다. 페이스는 방에 CCTV를 설치하곤 오웬의 변화를 지켜봤다. 그는 눈앞에 사람이 없으면 급격하게 얌전해지곤 했다.
원래도 오웬은 날 보면 자주 화내곤 했지. 페이스는 쓸데없는 감상을 옆으로 치워버리곤 그에게 줄 토끼를 손질했다.
또 다른 점이라면 조리된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거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이나 내장만 먹었는데 이전의 그는 비위가 좋긴 해도 핏기가 비치는 고기는 먹지 않았다. 문득 토끼의 배를 가르다 생각했다. 오웬이 무슨 음식을 좋아했더라? 고작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둘 다 요리 실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페이스는 오랜 용병 생활로 미각이 퇴화했고, 먹을 수만 있다면 뭐든 먹었으며. 오웬은 음식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래도 데이트할 때는 제법 맛있는 집을 찾아다니곤 했는데, 맛있는 집을 찾아갔으니 당연히 입에선 ‘맛있다’는 소리가 나왔을 거고, 그게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었다. 둘 다 배만 채우면 그만인 사람이었으니까. 그럼 왜 굳이 맛있는 음식집을 찾아갔냐면. 그러게. 토끼의 피를 양동이에 받고는 내장을 꺼냈다. 오웬이 좋아하는 건 심장과 간이었다. 창자 부분은 버리고 심장과 간을 보기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잘라서 가져가면 그가 흥분해서 입을 벌리곤 했다. 날 먹고 싶다는 뜻이겠지. 페이스는 벌린 입에 심장과 간을 넣어주며 오웬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였다.
왜 굳이 맛있는 식당을 찾아갔냐면, 그와는 좋은 추억만 만들고 싶었으니까. 보통의 욕망 아닌가. 페이스는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 회색으로 점철된 지난 추억을 회상했다. 다 식어 빠진 피자와 미지근해진 맥주를 함께 먹은 날이라던가, 새벽에 옆구리에 피를 질질 흘리고 들어오는 자신을 창백해진 얼굴로 받아주는 오웬이라던가. 자신의 가짜 장례식에서 울고 있는 그라던가. 도대체 왜 이런 기억뿐이지? 분명 좋은 일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 가령 이 집에 처음 이사를 온 날, 집을 완성하지 못해 밴에서 잠을 청해야 했던 날들. 비좁은 침대에서 차가운 발이 스치는 것을 느끼며 잠들었던 날들.
사람을 잃는다는 건 그와 관련된 모든 기억을 잃는 것과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무리 좋은 기억을 회상하려고 해도 함께 웃고 떠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건 비참했다.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함께 해줄 사람이 있어야 기쁘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아무리 피해가려고 해도 나쁜 생각은 페이스의 발목을 댕강 자르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기억이란 날카로운 무기가 페이스의 몸을 난도질했지만 그는 죽지 못했다. 이런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분명 ‘치료제’나 ‘백신’ 같은 게 만들어질 거야. 그렇지? 보이지 않는 희망의 끈을 잡고 있느라 손이 잘려 나가는 것도 모른 채. 내내, 피를 질질 흘리고…….
입을 틀어막은 천 위로 입을 맞추고 마주 앉아 그가 변해가는 모습을 천천히 지켜봤다. 제발 죽여달라는 처절한 눈동자를 뚫어져라 응시한 채, 믿지도 않는 빌어먹을 신에게 기도하며.
일 년쯤 지났을 때 한니발에게서 연락왔다. 복귀할 수 있겠냐는 물음에 페이스는 한치의 고민도 없이 ‘예.’하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서 무엇을 읽었는지 한니발은 한숨을 한번 쉬고는 위치를 말해줬다.
“탈영병까지 모을 정도로 사람이 없나 봐요?”
모처럼 에이팀이 모두 모였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머독은 전처럼 미친 듯이 웃고 떠들지 않았고, BA는 입매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으며 페이스 또한 그들에게 굳이 살갑게 굴지 않았다. 온몸을 무장하고 총을 들고 헬기에 올라탔다. BA에게 괜찮냐고 묻자 그는 더 무서운 것이 생겼기에 괜찮다고 했다. 헬기가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생존자는 제로. 움직이는 모든 것을 쏴 죽여라.’ 한니발이 내린 명령은 서늘하다 못해 눈이 시릴 정도였다.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생존자를 박박 긁어모은 정부가 내린 지침은 모두 쏴 죽이라는 거였다. 이미 인구의 20%가 죽었고, 이대로 두면 미국이 위험할 거란 뜻에서 내린 결정이라는데, 소중한 걸 잃어본 적 없는 꽃밭에 있는 놈들의 일 처리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총 한 번 제대로 잡아본 적 없는 머저리들. 방공호에 틀어박혀 종일 엉덩이나 긁어대라지.
먹을 게 없어서 쫄쫄 굶은 좀비들의 대가리를 뚫는 건 토끼를 사냥하는 것보다 쉬웠다. 아, 출장 오기 전 식사는 좀 많이 먹일 걸 그랬나? 총알이 좀비의 머리를 꿰뚫자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피로는 감염되지 않는다는 정보를 듣자 페이스의 난도질은 더더욱 거칠어졌다. 총알이 다 떨어지자 허리춤에 차고 있던 두꺼운 마체타로 놈들의 머리를 찍어 내렸다. 시체를 죽이는 건 생각보다 별로였다. 써는 맛이 사슴보다 못하네. 정확히 뇌를 노려야 하는 것도 번거로웠다.
뇌를 죽여야 움직임이 멎고, 시체는 가족에게 돌려보내기 위함이라는데 얼굴이 난도질 된 시체를 어느 가족이 보고 싶단 말인가? 마스크에 핏물이 진득하게 고여 숨을 쉴 때마다 피 냄새가 진동했다. 마스크를 내리자 찬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와 온몸을 찔렀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자 사방이 시체였다. 후.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고개를 들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곧 크리스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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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챙겨본 적은 없는데요.”
“재미없네.”
오웬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건넨다. 그가 건넨 맥주를 받아 들고는 소파에 길게 늘어진 페이스가 창밖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한다.
“여긴 눈도 안 와?”
“오긴 오는데 인공눈만 뿌립니다.”
굳이 인공눈까지 뿌릴 이유가 있어? 오웬이 페이스의 옆에 앉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슬라 누블라에는 겨울이 와도 눈이 오지 않았다. 그런 섬이었다. 모든 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섬. 눈을 뿌리는 이유야 뻔하죠. 관광객들이 그걸 원하니까. 새하얀 눈밭을 걸어가는 공룡을 보고 싶어 하니까. 그게 인공눈을 뿌리는 이유였다.
“그럼 트리 만들기 같은 것도 안 해?”
“트리라면 본부에 많잖아요.”
그것도 징글징글하게 큰 것들이. 오웬이 질색하며 고개를 젓는다. 맥주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노트북을 열어 오늘 훈련 상황을 정리한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신 페이스가 천천히 입술을 뗐다.
“대장은 아무리 일하는 중이라도 우리에게 꼭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게 시켰어. 사막 한가운데서도 그랬고, 고립된 섬에서도 그랬지. 갑자기 크리스마스니까 나무를 꾸밀만한 물건을 찾아오라는 거야. 우리는 적의 시체에서 열쇠라던가 선글라스 혹은 놈들의 지갑까지 나무에 매달았지. 썩 보기 좋은 트리는 아니었어.”
노트북을 두드리던 오웬의 동작이 느려졌다. 목이 타는지 페이스가 맥주캔에 입술을 붙인다.
“한번은 머독이 거기에 BA이 팬티를 걸어놔서 엄청 웃기도 했지. 아무튼, 그때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 추억이었어.”
한번은 이런 짓을 왜 해야 하냐고 따져 물었는데 대장이 뭐라는 줄 알아? 사람 죽이는 일에 익숙해져서 이런 일의 즐거움을 모르면 안 된다나 뭐라나. 설마 내가 사람 죽이는 일을 한다고 해서 크리스마스를 즐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페이스의 말은 물음표로 끝났지만 오웬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답을 알고 있었다. 오웬이 노트북을 덮고는 고개를 튼다.
“좋은 나무를 구해오면 꾸미는 것 정도는 같이 하죠.”
그래, 올해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야겠다. 작년엔 너무 바빠서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올해엔 돌아가면 좋은 나무 하나를 가져가서 트리를 꾸미는 거야. 조명도 달고 화환도 달고, 꼭대기에는 커다란 별을 달아놓자. 오웬은 안 그런 척 꾸미기에 열심히였지. 이상한 공룡 모양 인형까지 가져와서 트리에 매달곤 했지. 그게 뭐냐고 비웃으면 이번에 판매하게 될 인형들이라고 헛기침을 하곤 했다.
“페이스. 돌아가자.”
BA가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가자. 페이스는 들고 있던 마체테를 거칠게 휘두르며 피와 살점을 털어냈다. 일주일 후 다시 일이 있을 거란 말에 페이스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오웬이 기다리거든요.” 페이스의 말에 세 사람이 시선을 교환한다. 페이스. 비교적 말솜씨가 좋은 BA가 입을 뗀다.
“그 사육사 살아있어?”
“무슨 소리야? 당연히 살아있지.”
“아니, 난 네가 여기 왔다는 게 그래디가 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돌아온 건 식량 때문이야.”
페이스가 콘소메 수프가 든 통조림을 들고 흔든다. 한니발이 피 묻은 마스크를 벗어 던지곤 입에 시가를 물었다. 불이 붙자 독한 시가향이 막사 안을 가득 채웠다.
“지금 당장 그래디에게 전화해봐.”
“대장. 절 의심하시는 겁니까?”
“우리 목표가 뭔지 잊었나?”
머독이 소리친다.
“모든 감염자를 섬멸한다!”
“감염자를 숨겨두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해.”
“한니발.”
“키드. 널 믿지 못하는 게 아니야.”
네 괴로움을 이해한다는 것조차 오만이겠지. 하지만 언제까지 모른척하고 살 수 있을까? 언젠가 모든 감염자가 소탕되고, 결국 네 손으로 그를 죽여야 할 날이 올 텐데 그걸 견딜 수 있을까? 한니발이 말을 삼키곤 시가를 깊게 빨아들였다.
“그건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나?”
그건,
이제 오웬의 손은 따뜻하지도 않고, 눈은 부드럽게 휘어지지도 않으며 내 이름도 부르지 않았다. 그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드는 법도 잊었고, 사냥하는 법도 잊었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법도 몰랐다. 그건 살아있다고 할 수 있나? 하지만 죽었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지 않나? 고작 물렸을 뿐인데. 고작 손가락 하나 물렸을 뿐인데!
오웬의 새끼손가락이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페이스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본다. 하얗게 질린 얼굴 위로 핏줄이 섬뜩하게 올라오기 시작한다. 만약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난 네 손목을 잘랐을 것이다. 그것도 안 된다면 팔을 잘라냈을 것이며. 네가 살아만 있다면 모든 걸 잘라냈을 것이다. 그것 역시 살아있다고 말하기엔 어폐가 있을 것이다. 내 손을 타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오웬 그래디라니 지금과 다를 것도 없지 않은가.
집으로 돌아가는 페이스의 걸음이 무거웠다. 신발 밑창에 피와 살점이 여전히 달라붙어 페이스의 발목을 진창으로 끌어내리려 하고 있었다.
“……?”
페이스가 인상을 쓰며 차를 세웠다. 여기까지 사람이 올 일은 없었으나 혹여나 하여 모든 문을 잠그고 오웬을 창고까지 옮겨놓았다. 설마. 페이스는 차에서 내리며 품에 권총을 확인했다. 현관문이 엉망으로 부서져 있었다. 도끼로 내리친 흔적. 페이스가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안쪽에서 사람 말소리가 들렸다. ‘이거 살아있는 거 맞아?’‘신고하면 보상금이 얼마랬지?’ ‘움직이는데?’ ‘야, 조심!’ 머리를 노리는 것에는 이골이 나 있었다. 페이스는 쓰러진 두 사람의 시체를 치우려다 문득 오웬의 입에 있던 천을 벗기곤 두 사람의 손을 차례로 물게 했다. 손에 남은 선명한 자국을 보며 그 자리에서 얼굴을 쓸어내린 페이스가 총을 들어 그의 머리에 겨눴다.
사람을 죽이는 일에 죄책감을 가지기엔 너무 멀리 왔다. 그러나 감염자를 위해 사람을 죽였다니, 페이스가 허탈하게 웃는다. 오웬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죽여 달라 말했다. 그러나 그를 살려 놓은 건 다름 아닌 내 욕심 때문이었고, 그렇게 그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했다. 차라리 나도 너와 같이 물렸으면 좋았을 텐데. 왜 이렇게 아등바등……. 감겨 있던 오웬의 두 눈이 천천히 뜨이더니 옅은 초록색 눈이 페이스를 응시했다. 아아, 젠장! 페이스의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졌다. 오웬을 죽일 거였다면 사람을 죽이기 전에 죽였어야 했다. 이제 와서 잘못을 깨달은 척, 모든 걸 바로잡으려는 척해도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단 말이다.
시체는 오두막 뒤편에 있던 산에 묻었다. 너무 얕게 묻으면 곰이나 코요태가 냄새를 맡고 땅을 파헤칠 것이므로 구덩이를 아주 깊게 팠다. 손바닥에 잇자국이 남은 머리 터진 시체 두 구. 누가 봐도 좀비로 보이는 행태. 페이스는 적당한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그것을 전기톱으로 잘라 질질 끌고 가서 집 밖에 설치해둔 다면 꽤 보기 좋을 것이다. 그 옆에 모닥불을 피우고 담요를 덮고선 미지근한 위스키를 마시며 보내는 밤은 끝내주겠지. 그런 덧없는 미래를 상상했다.
➤
“오웬.”
“……페이스?”
오웬이 다리에 힘을 줘 일어나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의아해하던 오웬이 페이스의 부축을 받아 일어났다. 온몸이 먼지투성인건 둘째치고 냄새가 너무 심했다. 이게 무슨. 오웬이 손을 닦아내려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페이스가 이끄는 대로 욕실로 걸어간 오웬이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온몸이 비쩍 말라 있었다. 옷을 벗기지 더 흉했다. 드러난 갈비뼈나 비쩍 말라버린 다리가 그랬다. 생전 처음 보는 자신의 모습에 오웬이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페이스가 그를 들어 욕조에 내려놨다. 미지근한 물이 머리에 쏟아졌다.
페이스는 말없이 오웬의 몸을 닦아냈다. 머리를 감기느라 샴푸를 한 통 다 쓴 것 같았다. 수건으로 얼굴부터 닦아내자 시야가 확 트였다.
“제가 할 수 있어요.”
오웬이 수건을 낚아채려 했으나 닿지 않았다. 팔이 제대로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쩍 말라버린 자신의 팔을 보던 오웬이 나지막이 물었다. “얼마나 지났죠?” 페이스가 오웬의 머리를 수건으로 닦아내며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이른다. “2년 하고도 4개월쯤.” “치료제가 만들어진 건가요?” “어.” “그럼 그동안……”
“걱정 하지 마.”
커다란 수건을 펼친 후 오웬의 몸을 감싸 안은 페이스가 그를 그대로 들어 식탁 앞에 앉혔다. 그는 커다란 냄비에서 무언가를 뜨더니 오웬의 앞에 내려놨다. 맑은 빛의 수프였다. “이건…” “닭고기야.” 페이스가 수저는 들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손가락이 뻣뻣하게 굳어 제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페이스가 떠주는 수프를 받아먹고 있자니 아기 새가 된 기분이었다. 오웬은 말라붙은 목을 겨우 축일 정도로만 받아먹고는 고개를 저었다.
“많이 먹고 많이 움직여야 빨리 낫지.”
“페이스.”
“닭고기가 별로면 토끼고기로 스튜를 해줄까? 자기 그거 좋아하잖아.”
“네?”
제가 무슨……전 한 번도 토끼 고기를 먹어 본 적 없어요. 오웬의 말이 다 끝났는데도 돌아오는 답이 없다.
“페이스?”
“……어.”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게 있는데, 내가 감염됐을 때 혹시.”
사람을 먹였어요? 오웬이 뒷말을 삼켰다. 만약 페이스가 자신에게 사람을 먹였다면? 그건 비난받아야 마땅한 일이었으나 자신은 그럴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느냔 말이다. 무려 의식이 없는 자신을 2년이나 넘게 돌봐준 사람에게. 그러나 동시에 사람을 먹었다면 참을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오웬이 말을 잇지 못하자 페이스가 대신 대답했다.
“토끼를 잡아서 먹였어. 가끔 사슴도 잡았고, 주로 닭고기 통조림을 썼는데 조리된 건 안 먹더라고.”
“그럼……”
“사람은 한 번도 먹인 적 없어.”
진짜야. 믿어줘. 페이스가 몸을 일으켜 오웬의 이마에 입술을 붙이고 몸을 끌어안았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만약 사람을 먹었다면 깨어난 너는 버티지 못했을 테지. 나를 원망하는 건 괜찮지만, 스스로가 역겨워서 참을 수 없었을 거야. 그래서 그랬어.
따뜻한 물로 씻기고 음식을 먹은 오웬의 얼굴은 전보다 혈색이 좋아 보였다. 비록 비쩍 말라서 혼자선 제대로 걷지도 못했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둘은 천천히 생활을 이어가기로 했다. 아주 느긋하게. 너무 바쁘지 않게. 시간은 많았고, 세상은 고요했다.
회복은 빨랐다. 애초에 어디 크게 다친 것도 아니었고, 페이스도 종일 붙어서 함께 있었기에 도움도 많이 받았다. 틀어놓은 뉴스에선 연신 사회가 하나둘 복구되어 가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오웬이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두 사람은 2년하고도 반년 만에 몸을 섞었다. 안 된다고 하는 사람도 없었고, 싫다는 사람도 없었다. 부딪힌 입술은 축축했다. 아래는 엄청나게 아팠고, 페이스는 말이 없었다. 커튼을 단단하게 친 방안은 빛 한 점 들지 않아서 그의 얼굴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오웬이 참지 못하고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을 때 그가 움직임을 멈췄다.
“가끔……”
페이스가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어. 그때마다 내 머리를 총으로 쏴버리고 싶은데, 이젠 너무 행복해서 깨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해.”
“…….”
“오웬, 대답해 줘. 이게 꿈인지 아닌지.”
“…템플턴.”
오웬이 페이스의 양 뺨을 붙잡고 제 어깨에 붙였다. 얼굴이 축축하다고 느꼈거늘 그가 울고 있음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그냥 지금을 즐겨요.”
2년 동안 페이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건 오웬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눈을 떠보니 모든 게 끝나있었고 뉴스에선 모든 감염자가 소탕되었다는 소식만 흘러나왔다. 만약 감염자를 숨겨두고 있을 시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탁. 페이스가 라디오를 끄고는 엽총을 건넨다. 사냥하러 가자. 그는 사냥이 익숙해 보였다. 하긴 멸망한 세상에서 식량을 구하려면 사냥이 가장 적합했을 것이다. 엽총을 쥐고 그의 뒤를 조용히 따라가던 오웬은 뺨에 닿는 차가운 기운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쩐지 올해는 눈이 안 온다 했더니 크리스마스이브에 맞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페이스가 오웬의 앞을 손으로 가로막는다. 쉿. 저 멀리서 사슴 한 마리가 바닥에 고인 물을 마시고 있었다. 페이스가 자세를 낮추고 총을 겨눈다. 탕! 날카로운 파열음이 귀를 때림과 동시에 새가 날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여기 있어.”
페이스가 총을 들고는 걸음을 옮겼다. 사슴은 자리에 없었다. 맞췄나? 알 수 없었다. 바이러스의 후유증인지 시력이 저하되어 있었다. 그뿐이면 미각이나 후각도 마찬가지였다. 뭘 먹어도 맛있다고 느끼지 못했고, 냄새도 잘 맡지 못했다. 통각도 없었다. 뜨거운 냄비를 맨손으로 만지는 오웬을 보고서 페이스가 기겁하며 달려오기도 했다. 물집이 올라온 손에 연고와 붕대를 감아주며 앞으로 요리는 자신이 할 테니 불에는 손을 대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당신이 집에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이제 집에만 있을 거야. 나 완전히 은퇴했거든.” “언제요?” “…백신 구했을 때.” 그땐 정신도 없었고, 페이스도 힘들어 보였기에 묻지 못했지만 궁금한 것이 있었다. 감염자를 말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는데 나는 어떻게 살아있는 건지, 백신은 또 어떻게 구했는지 말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백신을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며 백신이 만들어진 것은 이후에 같은 바이러스가 퍼졌을 때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물론 백신을 맞은 이들도 있었다. 대통령의 아들이라던가 어느 기업가의 부인이 그랬다.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조건은 뇌가 파괴되지 않았을 것. 치명상을 입지 않았을 것. 사람을 먹은 적이 없을 것.
사람을 먹은 적이 없을 것.
난 정말 사람을 먹은 적이 없나?
오웬의 발치에 무언가 툭 걸렸다. 그건 빗물에 쓸려 내려온 사람의 시체였다. 손에는 사람의 잇자국이 남은 시체.
템플턴 아서 펙은 오웬 그래디에게 숨기는 것이 있으며, 오웬 그래디 또한 템플턴 아서 펙에게 숨기는 것이 있었다. 허나 사람은 누구나 숨기고 싶은 사실이 있었고, 그건 둘이 특별히 거짓말을 하거나 잘못했다는 뜻이 아니었다.
페이스는 오웬에게 사람을 먹이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죽였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아무 죄 없는 사람을 죽였지. 너를 신고하려고 해서. 네가 죽을까 봐 그들을 죽여서 산에 파묻었어. 혹여나 일이 잘못되어 문제가 생길까 봐 잇자국까지 남겼다. 만약 오웬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오웬이 시체의 피 냄새를 맡고 고개를 숙였을 때였다. 번쩍 뜨여진 시체와 눈이 마주쳤고, 지옥의 문이 입을 벌리더니 오웬의 목을 물어뜯었다.
탕!
감염자의 피를 뒤집어쓴 오웬이 피가 솟구치는 목덜미를 꾹 누르며 뒤로 넘어졌다. 엉덩이로 슬금슬금 물러나던 그의 손에 엽총이 잡혔다. 오웬! 멀리서 울리는 페이스의 목소리가 환청 같이 울려 퍼졌다. 총구를 턱에 맞추고 황급히 방아쇠를 당기려던 오웬의 몸이 페이스에 의해 저지됐다. 엽총을 발로 차고 오웬의 몸을 끌어안은 그가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시체. 그 시체였다. 자신이 죽이고 오웬의 입을 빌려 ‘감염자’로 위장시킨 시체. 살아있었나? 어떻게? 머리를 바로 찔렀는데 죽지 않았다고? 도대체 왜? 페이스가 숨을 헐떡이며 오웬의 상처를 살폈다. 살점이 온통 뜯겨나가 있었다. 감염이 문제가 아니라 출혈로 죽을지도 몰랐다. 황급히 그를 데리고 차에 올라타려는 순간 오웬이 말렸다.
“템플턴. 백신은……, 두 번은 듣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죠.”
페이스가 우뚝 멈춰서서 오웬을 바라보았다. 원망이 뚝뚝 떨어지는 새파란 눈동자를 마주 본 오웬이 옅게 웃었다. 집으로 가요. 우리 집으로.
벽난로에 불을 붙이고 토끼 스튜를 끓이고 멋진 트리를 만들고 모처럼 쿠키를 굽고 케이크를 만드는 일을 계획했다. 네가 깨어난 후 첫 크리스마스니까. 페이스는 오웬이 ‘감염자’였던 기간 동안 트리를 만들지 않았다고 했다. 왜냐고 묻자 그냥 재미가 없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재미가 없었어. 혼자서 그러는 건.” “에이팀은요? 그 사람들하고 만들지 그랬어요.” “그놈들도 이제 트리를 만들고 웃고 떠들지 않아.” 2년 동안 세상은 크리스마스고 새해고 반기지 않았어. 아무것도 즐거워하지 않았지. 무엇에도 웃을 수 없었어. 그러니까 올해는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을 거야. 그리 생각했었다.
소파에 오웬을 앉히고 구급상자를 가져왔다. 그러나 아무리 상처를 살펴도 살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젠장! 붕대를 집어 던진 페이스가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이마를 쓸어올렸다. 창밖에는 눈이 펑펑 오는데 페이스는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었고, 오웬의 옆에는 벽난로가 활활 타오르는데 그의 생명은 꺼져가고 있었다. 숨을 몰아쉬던 오웬이 가늘게 눈을 뜨고는 물었다.
“…저 진짜 사람 먹은 적 없어요?”
“없어.”
페이스의 음성은 거칠고 높아져 있었다. 지금 그게 중요해? 화를 내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만약 오웬이 또다시 감염자가 된다면 그땐 백신도 듣지 않을 것이다. 오웬이 페이스의 대답을 듣자마자 한결 편해진 얼굴로 소파에 몸을 푹 기댄다.
“다행이다…….”
“뭐?”
“사람을 먹지 않아서, 다행이라고요.”
그를 빤히 바라보던 페이스가 맞은편 소파에 몸을 푹 기대앉았다.
“…그 시체는 내가 만든 게 맞아. 널 죽이려고 했거든.”
정확히는 신고하려고 했지. 신고하면 바로 군대가 와서 널 총살할 거고. 난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을 거야. 빌어 처먹을 군인 놈들이 또다시 내가 아끼는 것을 빼앗아 갔구나. 생각했을 거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주절주절 말이 길어졌다.
“만약 시체를 들킨다면 ‘감염자라서 죽였다’라고 둘러대기 위해 네 잇자국을 남겼어.”
설마 죽지 않았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지만. 굳이 두 명이었다고 말하진 않았다. 벽난로 위에 있던 리볼버 탄창을 확인한다. 총알은 단 두 개였다.
오웬이 깨어난 건 무더운 여름이었다. 백신을 구해 그에게 주사한 뒤 초조하게 자리를 지키던 페이스는 빛이 돌아오는 그의 눈을 보고는 믿지도 않는 신을 향해 기도했다.
여름 내내 집에서 재활 운동을 했다. 다행히도 오웬은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었고 인내심도 있었다. 2년이나 쓰지 않은 근육이 돌아오는 데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여전히 마른 몸은 안쓰러웠지만, 그건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면 그만이었다.
라디오를 틀자 캐럴이 흘러나왔다. “2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저 노래가 나와요?” “저 노래는 매년 나왔잖아.” “그건 그렇지만.” 오웬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겨울의 밤은 빠르고 고요하게 오두막을 집어삼켰다. 벽난로의 불빛만이 두 사람을 비추었다.
“트리를 만들 생각이었어.”
“트럭에 있던 그 나무로요?”
“봤어?”
“못 보는 게 더 어렵죠. 엄청 크던데, 그런 건 어디서 찾았어요?”
“머독이 헬기로 가져다줬지.”
하! 오웬이 웃음과 함께 잔기침을 터트렸다. “이제 BA는 헬기도 잘 타. 고소공포증이 없어졌어.” “저런.” 오웬이 자꾸만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무거운지 잠이 오는지, 라디오에선 캐럴이 끝났고 앵무새 같은 앵커의 목소리만 울렸다. 장작 타는 소리와 카랑카랑한 앵커의 목소리가 오두막을 가득 채웠다. 한참을 눈을 감고 있던 오웬이 천천히 눈을 떴다.
“메리 크리스마스. 템플턴.”
“메리 크리스마스.”
다시 눈을 감은 오웬은 잠이 들었는지 눈을 뜨지 않았다. 페이스는 오웬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세상에 감염자가 사라진 지 200일이 넘었습니다. 차라리 그가 살려달라거나 같이 죽어달라고 말했다면 페이스는 기꺼이 그리했을 것이다. 내 실수로 네가 죽었어. 페이스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리볼버를 들어 오웬의 머리에 겨눈다. 내가 그놈들을 완벽하게 죽였어야 했다. 아니면 네게 물게 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게 아니면, 그게 아니라면…….
“sleep tight, owen.”
탕!
메리크리스마스!
탕!
<메모>
20X1. 11.02
선호하는 부위는 간, 심장. 주로 토끼를 사냥해서 먹였으며 사냥에 실패했을 경우 닭고기를 먹였다. 냉동된 것도 잘 삼켰으나 익힌 건 먹지 않았다.
창자 부분은 먹지 않았다.
목이 마르진 않나?
20X1. 11.10
제법 사냥에 익숙해졌다.
총소리에 다른 좀비가 몰려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좀비는커녕 사람도 오지 않았다.
20X1. 11.15
슬슬 집에 식량이 떨어져서 멀리 가야했다. 식자재 마트는 이미 다 털린 후였다. 오웬을 저 상태로 두고 가도 괜찮을까?
실험 1.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오웬은 난폭해져서 발소리만 들려도 으르렁거렸다.
실험 2.
한 달 동안 굶겼더니 제법 얌전해졌다. 여전히 으르렁거렸지만 전처럼 달려들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는 않았다.
실험 3.
두 달쯤 굶겼더니 살이 쭉 빠졌고, 움직임도 둔해졌다.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오웬을 햇빛이 잘 드는 자리로 옮기기 위해 밧줄을 풀었는데 밧줄 자국이 그대로 손목에 남아있었다.
실험 4.
석 달쯤 굶겼더니 손으로 만져도 물지 않았다. 더 굶기면 죽을 것 같았기에 실험은 여기서 종료한다.
w. D_@IulWh